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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월 Jan 26. 2024

제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Job-念(잡념)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착하다'의 회사적(?) 의미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호구' 혹은 '예스맨'이지 않을까 싶다.


지인의 일화이다. 일 안 하기로 유명한 선배가 인사 발령으로 인해 같은 팀에 배치되었는데, 처음 인사를 나눌 때 그 선배로부터 "착하게 생겼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표면상으로는 칭찬의 말인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칭찬'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딘가 싸하다. '고놈 말 자~알 듣게 생겼네. 앞으로 쉽게 이용해 먹을 수 있겠네.'처럼 느꼈다고 한다.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듣게 되는 '착하다'라는 말은 우리가 어렸을 적 부모님이나 교과서로부터 배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의 그 '착한'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다 보니,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어느샌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 친구는 사람은 참 착해. 근데 눈치가 너무 없달까." 혹은 "착하긴 한데 좀 답답해." 등 인물을 평가할 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전에 일종의 도입부처럼 사용되곤 한다. 특히 회사에서 이런 평가를 더 많이 목격한다.


착한 사람은 회사에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거절을 잘 못해 업무적인 요청이나 개인적인 부탁도 대부분 받아준다. 가끔은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기도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려는 좋은 의도이나, 부탁을 들어주느라 정작 본인의 일 처리가 늦어지거나 이로 인해 같은 팀이나 부서가 피해를 본다면 '착한데 일 못하는' 사람이 돼버린다.


가끔은 상대방에게 강한 어조로 말해야 할 때도 있다. 불합리한 요구나 동료의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나 쓴소리를 해야만 한다. 혹시 민원을 상대하는 업무일 경우 규정에 따르면 민원인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므로 거절과 불승인 등 단호하게 쳐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럴 때에도 너무 착한 사람은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거나 쓴소리 하는 걸 꺼려해 결국 문제를 키울 수 있다. 결국 '착하지만 결단력 없는 사람'이 된다.


"제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인의 사례에 대입해 내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이 대답했을 것 같다.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365일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특히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받는 평가는 개인의 노력 이외에 너무 많은 외생 변수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뛰어난 직원, 훌륭한 팀장, 착한 사람과 같은 '타이틀'에 집착해서는 피곤해질 수 있다. 내가 A라는 부서에서는 훌륭한 직원이자 착한 사람이었지만 B라는 부서에 가서는 그저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직원이자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이는 일의 특성이나 부서 구성원, 그 당시의 상황 등 너무 많은 변수들로 인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나에 대한 평가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가 아니라 내 가족, 애인, 친구에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 때 나의 곁에 있어줄 있는 사람들에게 사전적 의미의 '착한 사람', 즉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한 사람'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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