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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Jul 16. 2024

나도 서울대 약대 나온 여자예요?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네 번째 이야기)

우울증으로 입원한 한 공무원이 있다.

 

가방 검사, 간호사와의 독대 과정을 마친 나는 드디어 내 병실로 들어가 침대를 볼 수 있었다. 6인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침대 다리 맡에 있는 창밖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햇빛이 무척 잘 들어왔다. 정신과 보호병동이 위치한 창밖 풍경은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생기가 있어 보였고, 건너편까지 연결한 구름다리 또한 운치 있게 보여 입원 환자를 배려한 위치 선정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려던 찰나였다. 같은 병실에 나보다 먼저 입원해 있던 60대 중후반의 한 아주머니가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던 내 옆에 다가왔다.     


“여기가 병원에서 풍경이 제일 좋아요, 나도 서울대 약대 나온 여자예요.”
 

나도. 

서울대. 

약대.

      

나는 서울대도, 약대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무 말도 안 한 나에게 처음 보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귀찮음과 거부감이 드는 찰나였다.     


“나는 네 번째 입원인데 새댁은 이번에 치료 잘해서 다신 오지 말아요. ”     


나도 그러고 싶었다.


병실에 들어서기 전 내가 간호사의 질문에 답을 하고 운동화의 끈을 풀고 있던 그 시각에 병실 반입에 합격한 짐이 나보다 먼저 내 침대 옆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대 약대 그녀는 사람보다 먼저 반입되어 올려져 있던 짐을 내가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다 살펴보았는지 물 빠짐 구멍이 송송 뚫린 목욕용 바구니는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마트에서 별생각 없이 산 몇 천 원짜리 샴푸가 이쁘다고도 하셨다. 피곤했다.

 

우울증으로 내 몸에 맞는 약을 맞추려고 멀쩡히 학교 다니는 아이까지 체험학습으로 돌려놓고 편히 있으려고 입원했는데 갑작스러운 관심에 짜증이 몰려왔다.       

목욕용 바구니는 인터넷에서 샀고, 샴푸는 마트에서 샀다고 하니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도 목욕 바구니 사달라고 해야겠다며, 마트에서 구매한 샴푸를 두고는 말했다.     


“나는 외제만 써서.”     


외제 샴푸를 써 본 적이 없던 나는 순간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강렬한 거부감을 참아야 했다. 우울증 때문에 겉으로 표현할 힘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외제만 쓰시는 분이 저렴한 내 샴푸에 왜 눈독을 들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몇 천 원짜리 샴푸가 뭐가 어쨌다는 건지 한 병실에서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불쾌감이 밀려왔다.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 물을 마시기 위한 종이컵과 생수, 간식이 필요한 줄 몰랐다. 내 짐을 이미 살펴본 서울대 약대 그녀는 종이컵을 챙겨 오지 않은 나에게 종이컵을 몇 개 주었고 자신이 다 먹은 빈 생수병과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챙겨주었다. 나를 위해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고마움보다 귀찮게만 느껴졌다.  


병실에 들어오고 나서 그녀가 계속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거니, 보호사가 서울대 약대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쉬러 온 사람한테 거 자꾸 귀찮게 하지 말아요.”       


“새댁이 종이컵이 없길래 종이컵을 줬어요.”      


그녀는 항변했고 마침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녀의 말은 정당했다.      

그녀의 관심이 귀찮긴 했으나 그녀가 준 세 개의 종이컵은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고 양치를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잠깐이지만 고마웠다. 마스크는 많이 가져 온터라 그녀는 나에게 준 마스크를 도로 가져갔고, 생수도 몇 병 챙겨 왔기에 그녀가 준 빈 생수병을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다.

      

양치할 때 화장실에서 만난 그녀는 종이컵으로 물을 받아 입을 헹구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고 창가에 두면 햇볕에 꾸덕꾸덕 잘 말라 종이컵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고 나의 지식을 넓혀주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부턴 그녀가 양치를 다하면 그때 양치하러 와야지...’     


<입원 둘째 날>

잠을 적당히 자고 싶어요. 약을 안 먹으면 거의 못 자고요 먹으면 너무 졸리고요 또 줄여서 먹어봤는데 자긴 자는데 더 자야 할 거 같은데 더 자지 못하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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