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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8시간전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여덟 번째 이야기)

인지 향상 활동 집단 프로그램을 한다기에 무언가 궁금해 참석하였다. 세 글자로 된 글자 중 밑줄 친 곳의 빈칸을 채워 넣는 활동이었다.
 

‘고_마'

'코_리'


고구마

코끼리 

    

이런 식으로 밑줄 친 곳을 채우는 활동이었는데 아쉽게도 내 인지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진 않았다. 

 

다음 장에 비어 있는 칸에 적절한 접두사를 적어 넣는 것까지 다 하고 나니 잘하셨다면서 나에게 뒷장을 해보라고 했다. 칭찬받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서울대 약대 그녀와 조증 남자에게 이미 예민해진 나는 맞은편에 앉은 그들의 말소리에 정신이 산만해져 접두사를 생각하는데 집중력이 자주 흐트러졌다. 그냥 아는 만큼 하면 되지 본인의 인지향상활동을 왜 물어보면서 옆 사람 것을 베끼는 건지 의아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겉으로 표현을 안 하고 모른 척했으나 머릿속에 솟구치는 짜증까지 제어할 순 없었다. 조용히 혼자 하라는 지시에도 서울대 약대 그녀는 조증남자에게 물어보면서 접두사를 채웠고 조증남자는 종이에 글로 쓰면 될 것을 중얼거리며 말로 답을 채워갔다. 거슬린다 거슬려.  


뒷장은 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었는데,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OOO으로 가고 싶다.’라는 문장이 있기에 인지 향상 활동을 얼른 마무리하고 싶어서 별생각 없이 대충 ‘대학 시절로 가고 싶다.’라고 적었다. 


6인실 여자 병실에 입원 중인 3명 중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50대 행복님에게 간호사가 옆에서 질문을 읽어주며 프로그램 활동을 도와주었다. 고구마, 코끼리의 빈칸 채우는 것도 어려운 듯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자 간호사는 뒷장에 자신의 생각을 쓰는 부분으로 넘어갔다. 간호사가 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님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로 가고 싶어요~?”   

하루 종일 말이 없던 그녀가 대답했다.  

<7027년으로 간 타임머신>

“죽. 고. 싶. 어.”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가 내 귀에 애절하게 박혔다. 시선을 종이에 처박고 있는 척했으나 "죽. 고. 싶. 어."를 선명하게 들어버리고 말았다.


옆에서 도와주던 간호사가 탄식했다. "이래 가지고 행복님 집에 가겠나."


행복님은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던 게 아니었다...


<입원 일곱 번째 날>

아이와도 매일 통화해요. "아침 9시에 엄마 전화해~"하더라고요.

(중략)

프로그램 참여하긴 했는데 음... 너무 쉬웠어요. 너무 쉬웠는데 좀 짜증도 났어요. 조용히 좀 하고 하면 좋을 텐데 예민해서 그런지 몰라도. 근데 평소에도 그런 상황에서 짜증 났을 거예요. 그냥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하는 활동인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얘기하고 떠들고 있으니까 짜증 나더라고요.

(중략)

약이 제대로 맞아야 하는데 묘하게 좀, 그렇네요. 저도 생각 같아선 금방 나가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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