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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Nov 18. 2018

폰트계독 #15

한글궁체연구 - 훈민정음

2018.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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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흔히 훈민정음 하면 창제 의의나,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 해례본 등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판본 및 사본이 6종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는 크게 한문본과 언해본으로 나뉜다. 한문본에는 원본인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보 70호로 지정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바로 그 해례본이다. 그리고 세종실록 28년 9월조에 실린 실록본이 있으나, 실록본에는 해례 부분이 없다. 언해본은 국역본, 훈역본, 주해본이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월인석보의 첫머리에 실린 월인석보본, 고 박승빈 씨가 소장했던 박씨본, 일본 궁내성 도서실에 소장된 일본궁내성본, 일본인 소장의 사본인 카네자와본 등이 있다. 이 귀한 자료가 일본에 넘어가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같은 훈민정음해례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 등으로 나뉘는데, 이는 당시 집현전 학사이던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이개, 최항, 박팽년, 이선로, 강희안 등이 지었다 하며, 이들을 훈민정음 창제의 협찬자들이라 한다. 책을 보면 생각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쓰여있다. 그저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많은 판본들이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은 시대적 배경과 정책에 따라 오늘의 한글이라는 명칭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그 표기가 바뀌었다. 창제되고 1526년까지는 훈민정음, 정음이라 표기했고, 1527년부터 1893년까지는 언문이라 주로 표기했고, 양반, 선비들은 암클, 중클 등 부녀자나 중들이 쓰는 글이라 하기도 했다. 이후 1910년 일제강점기까지는 국문이라 표기했다. 지금의 한글이라는 표기는 1926년을 전후로 쓰기 시작한 듯하다. 주시경이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말로 한, 하나, 큰, 으뜸, 바름의 뜻으로 언문을 높여 부른 말이다. 정음에서부터 언문, 국문, 한글까지 시대에 따라 표기는 변해왔지만 말과 글은 크게 변치 않았다. 



   훈민정음과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은 그 순서와 표기가 조금 다르다.

훈민정음은 초성 17자, 중성 11자, 종성 17자로 표기되며 그 순서 또한 ㄱ, ㅋ, ㅇ, ㄷ, ㅌ, ㄴ, … 지금과 순서가 다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표기는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한글마춤법통일안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58년 이름을 바꾼 한글학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였는데, 33년 마춤법에서는 마춤, 바침 등으로 표기되는 반면, 58년 맞춤법에서는 맞춤, 받침으로 지금과 같이 표기되었다. 훈민정음에서는 초성, 중성, 종성이라 표기하나, 한글에서는 닿소리, 홀소리, 받침이라 한다. 지금의 한글은 닿소리 14자, 홀소리 10자, 받침 14자로 표기된다.





   다음으로는 훈민정음 창제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는 한글의 글자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를 기원적인 면에서부터 살펴보기 위함이라는데,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전모방설과 범자모방설, 몽고파사문자모방설, 서장문자기원설 등이 있으나 그 근거가 희박하다. 개인적으로는 파스파 문자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하는 설은 상형설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초성 17자는 소리를 내는 구강구조의 형태를 본뜨고, 중성 11자는 천지인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오행상형설은 토, 목, 화, 금, 수를 대입해 그 상형을 밝히며, 오음상형설, 순설음작용상형설, 원방상형설, 경세정운도설서의 상형설, 천지원방설, 삼재조화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읽어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다. 



   챕터의 제목은 훈민정음의 구조지만, 훈민정음 판본의 종류, 명칭과 표기의 변화, 창제의 기원과 여러 가지 설을 소개한다.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으로 표기되는 한글은 그 구조가 라틴알파벳에 비해 복잡하다. 현대 한글은 초성 14자, 중성 10자, 종성 14자를 통해 11,172자를 표기한다. 한글은 완벽한, 완전한 형태로 창제된 것이 아니다. 1443년 창제된 이후로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발전해왔다. 훈민정음 그리고 현재 쓰이는 한글꼴의 차이를 보면 그 구조와 형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활자 디자인보다는 레터링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전에는 최정호 선생님의 활자보다 김진평 선생님의 로고타입을 좋아했으나 지금은 최정호 선생님이 그린 활자를 공부하고 있다. 그 비례나 미감은 한글을 제대로 그리기 위한 교본과도 같다. 이제야 기본기를 갈고닦는 느낌이다. 훈민정음은 한글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알아야 설명할 수 있다. 근본과 기원을 모르고 하는 작업은 흉내에 그치기 마련이다. 지난 4년 간 글자를 그리며 해오던 흉내가 점점 그 근본에 가까워져 지금은 가장 글자다운 글자를 그리고 있다.



보진재 명조체, 최정호의 활자를 새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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