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스톤 Feb 04. 2024

입춘대길 야콘 김치와 야콘 동치미

만사형통 봄맞이 야콘 김치 담그기.

지난 금요일 강화 풍물시장 오일장에서 사 온 야콘으로 어젯밤 야콘 김치와 동치미를 담갔다.

야콘은 언뜻 보면 짙은 갈색의 고구마처럼 생긴 뿌리채소로 수분이 많고 배처럼 옅은 단맛이 매력적이다.

아삭한 식감도 씹어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야콘과 작은 배추 두 통, 무, 쪽파, 양파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서 버무렸더니 맛있는 야콘 김치가 되었다. 입춘인 오늘을 야콘 김치와 야콘 동치미로 맞이하였다.

야콘 김치와 동치미 덕분에 입춘대길 만사형통한 봄이 온 것만 같다.


오늘도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주말에도 이렇게 새벽에 눈이 떠지는 걸 보니 이제 생체리듬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일어나서 씻고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108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108배는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알람 시계와 같은 기능을 한다. 거인은 너무 커서 아무리 내가 흔들어대도 깨어나지 않는데 이렇게 절을 하면 희한하게도 거인이 깨어난다. 거인이 깨어나면 세상에 두려울 일도 불가능한 일도 없다. 나는 거인과 함께 오늘 하루도 생동감 넘치게 잘 살았다. 


양파껍질과 양파, 대파, 표고버섯, 다시마로 채수를 깊게 우려내어 빻은 마늘과 홍합을 듬뿍 넣고 홍합탕을 시원하게 끓였다. 홍합탕을 메인으로 오늘 아침상을 차렸다. 풍물 시장에서 봐온 어린 시금치나물도 밑반찬으로 내놓고 우엉조림도 후다닥 해서 식탁에 올렸다. 어제 해놓은 잡채도 오늘 안 먹으면 버려야 하기에 데워서 식탁 위에 올렸다. 감태도 꺼내서 올렸다. 어제 담근 야콘 김치도 그릇에 담아서 올려놓으니 건강하고 신선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남편과 따뜻한 홍합탕에 야콘 김치를 곁들여서 맛있게 먹었다. 감태에 밥과 시금치, 우엉을 올려서 말아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마치고 주중에 쌓인 빨래들을 돌리고 고요히 앉아서 빨래를 개켰다.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매일 맨발 산행으로 쌓은 내공으로 이 산더미 빨래산도 거뜬히 올라가 본다.

'해발 500m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가보자!'

대부분 수건과 아이 옷이다. 내가 입는 옷은 기껏 해봐야 매일 산에 갈 때 입는 트레이닝 복 2벌과 청바지 2벌이 전부다. 남편이 입는 옷은 대부분 정장이기에 세탁소로 가고 남편 속옷과 러닝, 양말이 고작 빨랫감의 전부였다. 어느새 옷을 다 개켜서 서랍장의 제자리에 넣어두니 거실이 훤하니 깨끗해졌다.

 

별일 없이 고요한 주말 아침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별일 없이 슴슴한 맛으로 사는 것이 최고로 편안하고 건강한 인생이라는 것을 개킨 빨래를 집어넣으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풍물시장에서 사 온 호박엿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고 녹여 먹으니 고소하고 달콤한 엿 맛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호박엿 맛이 일품이네. '엿 맛이 이렇게 좋은데 도대체 언제부터 엿 먹으라는 말이 속어가 되어 부정적 감정이 담긴 말로 와전된 것일까?' 부정정 뜻이 담긴 엿의 표현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밤새 담가둔 야콘 김치도 잠을 잘 잤는지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와서 적당히 살짝 익은 듯하여 뚜껑을 닫고 김치 냉장고로 들여보내주었다. 야콘 동치미는 하루 더 실온에 두어야 맛있게 우러나고 익겠다 싶어서 그대로 두었다.


오후는 풍물시장 다녀온 일과와 야콘 김치와 야콘 동치미를 만드는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편집이 다 끝나서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눈이 너무 피로했다. 산책을 하며 잠시 바깥공기를 쐬고 오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원을 가서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들어왔다.


남편과 홍합탕을 데워서 가볍게 저녁을 차려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멍 때리며 휴식을 취했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친정 엄마였다.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다고 아이가 차에서 잠들었으니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라는 엄마의 전화였다.

나는 유모차와 작은 이불 하나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이를 들어 안을 때 분명 아이는 깰 것이다. 역시나 우리 아이는 깼다. 결국 칭얼대는 아이를 우리 엄마가 안고 우리 집까지 올라왔다.

엄마가 아이를 눕혀서 토닥이며 다시 재우기까지 약 30분 정도가 더 걸렸지만 말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께 어제 담근 야콘 김치와 야콘 동치미를 조금 덜어서 드렸다.

젓갈이 들어가지 않아서 깔끔하고 시원한 야콘 김치니 맛있게 드시라고 말이다.

사실 김치 그 자체보다도 입춘대길 만사형통의 발원을 하며 정성껏 만든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도 잠들고 남편도 잠들었다.

오늘 봄을 이렇게 맞이하였고 나도 입춘대길의 하루를 평온히 잘 마무리하고 불을 끄고 이만 자련다.

"봄아! 너무 그리웠다! 올 해에도 파릇파릇하게 알록달록하게 나를 안아주렴!"    

작가의 이전글 풍물시장에서 풍월을 읊는 야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