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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Feb 15. 2024

오랜만에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야?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세울까?"

오늘은 문수산 시골집에 손님이 왔다. 작년 이맘때 만났던 설암 환우였다. 우리는 1년 만에 만났는데 마치 엊그제 만났던 사이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이 친숙하고 반가웠다. 이 환우는 나보다 대여섯 살은 많은 언니였다. 나는 이름에 '님'존칭을 붙여서 부르다가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언니라고 불렀더니 정말 친척 언니 같기도 하고 옆집 언니 같기도 했다. 언니는 설암 수술 후 말할 때 발음이 엉성한 부분이 있어서 나는 언니의 말을 잘 못 알아듣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잘 알아들었다. 나는 이제 막 산을 타고 내려와서 밑반찬과 누룽지를 끓여서 점심을 챙겨 먹던 중이었다. 언니는 가방에서 반찬통을 꺼내며 뚜껑을 열고 바나나와 고구마를 먹었다.

언니는 최근 설암 재발로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많이 심란하고 힘들어서 잠도 못 자고 모든 진료 일정을 취소하고 왔다고 했다. 언니는 자연치유의 길을 걸어가자니 외롭고 두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표준 치료가 자신의 치유와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기에 무너진 마음만 부둥켜안고 있다고 했다.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야?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 

"......." 

언니의 질문 속에는 이미 모든 것은 마음이 관장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이치를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어떤 위기와 사건, 사고에 맞닥트리게 되었을 때 머리로 알고 있던 그 말과 단어들이 우당탕탕 떨어져 내려 허둥지둥 대고 혼란에 빠진 나 자신을 찰나에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이 마음의 세계를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며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의 화엄경에는 '증지소지비여경'이라는 시구가 있다. '오로지 깨달은 자리로 다른 경계가 아니로다.' 오로지 수행을 통한 선정의 체험으로 이라는 이 오묘하고 커다란 메아리가 7글자에 함축되어 있다.


언니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어제는 자연치유 전문 병원에 가서 비타민 주사도 맞고 왔다고 했다.

하루 주사 맞고 오는데 30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병원비도 너무 비싸서 병원을 다니고 싶어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암 시장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나도 암환우가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대학병원이 이든 자연치유전문센터든 암환우 전용 요양병원이든 면역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든 의료기기든 암보험이든 뭐든 간에 이 업주들에게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는 암환우들은 너무나 좋은 타깃이 된다. 

암환자들은 건강이 무너지면서 그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았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과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걸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너무나 두렵고 괴롭다. 주치의면 주치의, 명의면 명의, 몸에 좋다는 약이면 약, 의료기면 의료기 모든 것에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나약하고 허약한 정신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결코 어떤 물질, 어떤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결코 마음의 거인을 깨울 수 없다는 것을 치병의 길에서 알게 되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의지하여 수행을 통하여 나 자신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며 끊임없이 나를 담금질하고 일으켜 세울 때 마음의 거인이 깨어나며 환한 빛이 켜진다. 

생존을 넘어서 실존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뱀을 잡으려면 뱀의 얼굴과 목을 잡아야 뱀에게 물리지 않고 뱀을 잡거나 다룰 수 있듯이 마음 또한 이와 같다. 생존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뱀의 얼굴과 목을 단숨에 확 잡아내듯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의 목덜미를 확 잡아서 꾸준히 닦아나가는 길이다.


자연치유는 수행이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죽음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생명을 가진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풀고 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짧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얼마나 신비로운 생이 내게 펼쳐지고 있는지,

이 유한한 삶을 통해서 나의 메아리를 어떻게 영원으로 승화시킬지가 수행의 화두가 되었다.

 

밥도 다 먹고 언니와 한참 동안 교자상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언니는 내게 그 마음을 알려달라고 했다. 수행은 오직 스스로의 허물을 스스로 알아차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가는 길이기에 타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왜 스님들이 절에 들어가서 묵언 수행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다만 언니에게 마음이 괴롭고 두려움과 외로움에 사무칠 때마다 백팔배로 마음의 거인을 깨우는 연습을 하면 뱀의 머리를 잡듯이 마음을 잡는 고삐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혈액 순환이 잘돼서 잠도 잘 오고 여러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고 했다. 백팔배는 불교의 절 수행법이긴 하지만 마음을 닦는 일은 종교와 상관없이 하는 것이라 마음의 부담을 내려놔도 된다고 했다. 


언니는 기독교신자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하게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기꺼이 절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시골집에 1인용 접이식 두꺼운 매트가 있었다.

두툼해서 방석 대용으로 쓰기 딱 좋았다. 시골집 부엌에서 접이식 매트를 펴고 언니에게 절을 할 때의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언니에게 절법을 알려주고 함께 세 번 절을 해보았다. 가녀린 체구의 언니는 절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했지만 절을 어려워하지 않고 수월하게 잘했다.  

나는  유*브에서 내가 만든 참회문 영상을 켰다. "이 참회문을 듣고 읊으면서 백팔배를 할 거예요." 나는 언니와 함께 참회문을 들으며 절을 했다. 언니는 백팔배를 잘 마쳤다. 한 번도 절을 해본 적 없다고 했지만 숨 한번 쌕쌕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절을 마쳤다. 

"내가 원래 땀이 잘 안나는 체질인데 절을 하니까 몸이 뜨거워지면서 땀이 난다? 참회문을 들으면서 절을 하니까 너무 좋아! 너무 좋은데?"

나는 내심 똥개 훈련 시키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까 봐 염려가 되었는데 언니는 절을 하며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체험한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이제 매일 이렇게 절을 하며 마음의 고삐를 잡는 연습을 해나가면 돼요.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요."

언니와 나는 합장을 한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절을 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아이를 픽업할 시간이 되어서 언니와 함께 외투를 입고 짐을 챙겨서 서둘러 시골집을 나왔다.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정말 고마워요!"

"언니! 저도 언니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가웠고 꽃피는 봄에는 북한산에서 한번 만나요!"  "그래! 북한산에서 만나요!" 

언니와 나는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돌아가는 언니의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해 보였다. 

언니는 설암으로 인해 명확한 발음과 선명한 말을 잃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혀 속의 혀로, 말속의 말을 선명하게 듣고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초능력을 겸비하게 될 것이다.   

꽃 피는 봄에 언니와 함께 북한산에서 득음 수행하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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