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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과수원 14

신에 대하여

by 주단

-신에 대하여


우연한 기회를 좇아 교회에 나서 보았다.

신을 믿는 이들의 진실함과 그들의 신과 가까워지려는 노력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깨달은 바라곤 자기만족이라는 과제를 신이라는 미지의 대상을 통해 이루련다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자아의 붕괴와 신에의 믿음과 인류애를 읊고 있었지만,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신이라는 존재를 기반으로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자기 세계의 정립과 부유한 생활과 세속적인 풍족에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와 죽음 후의 지옥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하여, 그들을 신의 힘으로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 내지는 강요하고 있었다.


참 편하고 우아하게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힘든 노동 없이 사람들의 심리만을 이용한 가장 실속 있는 사업이 종교사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사한 실망감은 얼마 전 읽었던 부다의 위인전에서도 느꼈었다.

부다는 자신의 위치를 낮추고 겸손해지기 위해, 인간들 중 가장 낮은 위치라고 여겨지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러 다니길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낮은 거지의 위치가 되려면, 철저히 거지의 행색을 하고 다녔어야 했는데, 그는 승복을 입고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구걸 아닌 시주라는 명칭의 당당한 요구를 하고 다녔다.

그 모습은 그가 시주를 하러 다니기 위해 애초에 내세운 명목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 역시 종교행위라는 위선을 뒤집어쓴 돈벌이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힘들게 일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살기 위한 방책인 구걸을 구걸이라 칭하지 않고, 구걸하는 스스로를 거지로 인정하지 않은 위선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굴욕적이지 않게 먹고사는 방법은, 이 종교라는 위선을 쓴 구걸 내지 강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는 진실로 신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강력하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 신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대화의 상대이기도 했고, 내가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형상일 수도 있었다.

그 신은 가장 올바른 이치를 의미하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내 마음이 흔들릴 때 의지하는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 신에 대해 글로 묘사해 보려 노려한 적도 있지만, 그 어느 때에도 내 맘에 들도록 표현된 것은 없었다.

연모의 대상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에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상대였을 뿐이었다.


신을 통해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나의 소원이 현실이 되기를 바랐고, 때로는 정말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연과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나의 바람이 이루어질 때마다 더욱 확고히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어리석은 일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나는 마음의 안정과 의지의 대상을 얻을 수 있었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진실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믿음은 차츰 옅은 색조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신은 나의 바람처럼 계속 가까이에서 느껴지지 않았고, 그보다 앞서 분명히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와 자신의 의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짧으나마 신과 다시 가까워지려던 노력은, 내 바람이 기도로써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빈번해질수록 뜸해져 갔고, 나는 존재의 가치조차 미비한 신을 믿느니, 차라리 자신의 의지를 믿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통과 상처 속에 신의 따뜻한 손길을 찾을 때에 더욱 짙어졌고, 스스로의 불안정한 의지에 반발해, 완벽한 존재인 신을 그려볼 때에 더욱 짙어졌다.


신이란 존재는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불완전한 인간이 꿈꾸는 이상체일 뿐이었다.

더 이상 세상은 내가 어렸을 때 책 속에서 배우고 자랐던 것처럼, 선한 자에게 이로움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고뇌의 역사를 재롱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조직적이고 계산 빠르고 완벽한 신이, 어째서 이 미물의 가슴을 반항으로 들끓게 만들었는지, 무엇이기에 신이 무엇이라고 내가 그에게 화내고 반항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나의 반발심이 점점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어쩌면 존재의 모호함 역시 신의 계산 중의 하나인지 모른다. 모든 잘못의 책임을 맡지 않으려는.

그러므로 존재도 모호하고 책임조차 지지 않는 신에게 반발할 필요도 감사를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인간을 동정할 필요도 원망할 이유도 없다.

모두 각자의 생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고, 각자의 삶에 충실할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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