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친한 동생 생일날 카톡으로 선물과 메세지를 보냈다. 가벼운 인사와 고맙다는 답장으로 이야길 마무리할 때쯤 동생이 갑자기 새해 목표를 말했다. ‘올해 목표는 언니처럼 움직이면서 살기야’ 갑작스러운 고백에 기쁨보단 당황이 앞섰다. 새해 목표로 재물과 건강이 아닌 나처럼 살기라니, 내가 뭐라고. 쑥스러움에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다. 동생이 보낸 메세지를 한참 보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세보니 벌써 6년이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길래 나처럼 사는 게 목표라 말한 걸까, 지난 6년을 돌이켜보니 정말 치열했구나 싶다. 전문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했는데, 남편 외벌이로 학업 비용과 생활비 모두 충당하긴 어려워 수업과 연습시간 외 모두 아르바이트로 채웠다. 식사는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빵으로 대체했고 주로 걷기보단 뛰며 살았다.
그렇게 꿈꾸며 살던 어느 날, 코로나란 태풍이 찾아왔다. (그때의 절망과 우울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열심히 뿌린 씨앗에 싹이 트려는 순간 찾아온 태풍. 이제 막 피어난 싹이 죽지 않게 온몸으로 감싸며 버텼다. 곧 지나갈 거란 믿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태풍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몸집을 키우며 내 싹을 짓밟는 걸 넘어 땅까지 파괴했다.이 정도면 하지 말라는 뜻일까 온 우주가 방해하는데 버틸 수 있을까, 점점 커지는 태풍을 보며 난 좌절에 빠졌다. 막막함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 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눈 뜬 채 그냥 누워있었다. 천장 멍 때리며 눕방 하길 며칠째,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책상 앞에 앉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빵조각을 입에 욱여넣으며 달리고, 더 잘쓰기 위해 새벽까지 연습하고, 수십 수백 번 수정한 계획서들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4년을 버텼고 지금 난 내 꿈에 매우 가까워졌다. 스터디룸 빌려하던 수업이 내 작품으로 가득 찬 공방 수업으로 바뀌었고, 새해 목표로 도전한 공모전에서 출품작 모두 수상했다. 어느새 난 '열심히 사는 애'에서 '꿈을 이룬 사람'으로 바뀌었다. 꿈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렸을 뿐인데, 달리다 보니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다. 특별한 능력이 없던 내가, 남들 뒷모습 보며 따라가기 벅찼던 내가, 누군가의 목표가 되고 꿈이 된다니. 여전히 부끄럽고 감히 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감사한 마음에 해가 되지 않게 더 멋진 사람이 되려 노력 중이다.
꿈이 있다는 건 삶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을 넘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자신의 꿈이 누군가의 목표가 되고 희망이 되기까지, 꿈꾸는 이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