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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un 11. 2024

[에필로그] 수어와의 동행

수어를 배우는 순간

봄이 막 피어나던 3월 나의 수어 공부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여름이 코앞이다. 일주일에 두 번, 거의 빠짐없이 수어의 세계를 헤엄치고 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손짓과 동작을 연습하는 시간, 배움의 즐거움이 달콤하다.


수어는 그동안 내가 배운 어떤 외국어보다 재미있다. 외국어 공부는 기본적으로 묵묵한 암기와 반복이 중요하다. 수어는 내 몸을 움직이며 익혀야 해서 지루함이 덜 하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언어라서 하나를 배우면 두세 개를 알게 되기도 한다. 같은 손동작을 하면서 표정만 바꾸면 평서문과 의문문 두 개가 완성되는 식으로. 또는 돈을 의미하는 손동작을 한 채 내 몸 쪽에서 상대방 쪽으로 손을 뻗으면 '돈을 주다'가 되고, 상대방 쪽에서 내 쪽으로 팔을 움직이면 '돈을 받다'가 되는 식이다.


시각언어이기 때문에 가끔은 춤을 추듯 말을 한다. 나비가 나는 모양, 꽃이 피어나는 모양,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양을 손과 팔과 몸으로 나타내며 대화하는 언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지! 처음 배울 때는 수어로는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잔잔했던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지더니 그 파도치는 바다 위로 빨간 해가 떠올랐다는 문장을 풍부한 표정을 섞어 말할 수 있다. 얼굴 표정이 더해지니 묘사는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눈빛의 언어, 고요함의 언어, 이미지의 언어, 솔직한 언어, 표정의 언어, 공간의 언어… 농인들이 수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농인들이 불편해지는 순간은 청인들을 만날 때이다. 청인 중심 사회를 사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농인의 불편함이 생겨나는 것뿐이다.


아쉬운 것은 주변에서 농인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수어를 배우면서 올봄에 인생 처음으로 농인을 만났다. 남편에게 물으니 역시 실제로 농인을 만난 경험이 없다고 한다. 딸은 기차에서 수어를 하는 농인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고.


내가 농인을 조금 더 일찍 만났고 조금 더 자주 만났다면 나의 수어 공부는 훨씬 더 빨리 시작되었을 것이다. 농인들의 활동이 더 자유롭고 활발해지길 바란다. 농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도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농인들의 사회 진출도 더 많아지기 바란다. 농인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더 쉽도록 사회 제도가 청인 중심에서 농인 중심 쪽으로 한참 더 가까이 가기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청인과 더 많은 농인이 만나 서로의 다름을 바라보고, 존중하고, 이해하며 대화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수어 공부는 이 여름 이후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이 즐거운 공부가 나 혼자 느끼는 재미를 넘어서 세상에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름다운 언어,

수어를 배우는 순간이,

참 좋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411900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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