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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un 04. 2024

부모 곁을 떠나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비상을 응원해요

영화 <미라클 벨리에>가 남긴 감동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오늘부터 두 분의 아이는 없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부디 알아주세요. 비상하는 거예요

술기운도 담배 연기도 없이 날아가요 날아올라요


어머니는 어제 근심스러운 눈으로 절 바라보셨죠.

이미 뭔가를 알고 계신 것처럼

하지만 전 아무 문제없다고 안심시켜 드렸죠.

어머닌 모른 척해 주셨죠

아버진 어색하게 웃으셨고


돌아가지 않아요

조금씩 더 멀어질 거예요

역 하나 또 역 하나를 지나면

마침내 바다를 건너겠죠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오늘부터 두 분의 아이는 없어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날개를 편 것뿐.

부디 알아주셔요 비상하는 거예요

...

내가 걸어오는 길에 흘린 눈물을 부모님은 아실까요

전진하고픈 나의 약속과 열망

자 자신에게 약속한 내 인생을 믿을 뿐

멀어지는 기차 안에서

왜 어디로 어떻게 갈지 생각에 잠겨요


내 가슴을 억누르는 이 새장을 참을 수 없어요

숨을 쉴 수가 없죠

노래할 수도 없어요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

날아가요

날아올라요



주인공 폴라의 노래가 시작된다. 폴라의 시선은 심사위원석 너머 가족을 향한다. 몇 소절을 부른 후, 듣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위해 수어를 곁들인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손은 새처럼 나비처럼 끊임없이 날아오른다. 온몸으로 노래한다.  


폴라가 부르는 노래를 가족들이 바라본다. 폴라의 노래는 간절하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떠나야 해요..'

예상치 못했던 폴라의 수어 동작에 놀라며 엄마는 아빠의 손을 찾아 꽉 쥔다.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망울은 슬프고 복잡하다. 폴라의 눈빛은 간절해서 애달프다.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폴라의 엄마와 아버지. 결국은 딸을 놓아주며 그녀의 비상을 응원한다. 슬프지만 보낸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마지막 부분, 최고의 선곡이다. 영화의 내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노래, 마치 주인공 폴라를 위해 만든 것 같은 노래를 영화 안에 넣었다. 원곡은 프랑스 가수 미셸 사르두(Michel Sardou)의 비상(Je vole)이다. 영화 속에는 미셸 사르두의 사랑의 열병(La Maladie d'Amour)이라는 노래도 등장한다. 아! 듣고 들어도 아름다운 저 프랑스어 단어의 물결들! 프랑스어로 부르는 노래는 늘 나를 매료시킨다.


폴라의 노래 '비상'을 영화가 끝나고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가가 뜨거워지며 슬프다. 간절한 딸의 호소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보던 폴라 부모님이 떠오른다. 나 역시 부모인 까닭에 그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겠다. 험한 바다를 향해서지만 떠나겠다고 말하는 자식을 보내주어야 하는 마음,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아이인 자식을 바라보는 아련함.


영화 <코다>가 너무 좋았다.  04화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그 경계에 서서. (brunch.co.kr) 

그리고 2021년 개봉한 영화 <코다>가 리메이크작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원작은 2014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 <미라클 벨리에(원제:La famille Bélier)>였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작품은 내용이 똑같은 쌍둥이였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집안이 가축을 키우고 치즈를 만들었다면 리메이크작품에서는 고기를 잡는 것으로 바뀐 정도. 이렇게 똑같은 작품인데 리메이크된 <코다>가 아카데미에서 이런저런 상을 받은 것이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프랑스어를 유독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미라클 벨리에> 쪽의 감동이 더 컸다.


어쨌든 두 작품 모두 농인 가족들 속에서 유일하게 청인으로 사는 코다의 고단함이 아프고도 아름답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꿈인 노래하는 삶을 위해 집을 떠난다. 평생 농인 부모님의 통역을 해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이에겐 각자의 고유한 삶이 있는 법. 누구는 떠나야 하고 누구는 보내야 한다. 떠난 이는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씩씩하게 기운차게 살아내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길을 참으며 떠난다. 한 발짝 한 발짝 멀어지는 자녀의 뒷모습을 미소와 눈물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고. 주먹만 해서 부서질 듯 여린 몸으로 내 곁에 왔다가, 육아의 절절한 감동과 고통을 흠씬 선사해 주고, 어른이 되어 떠난 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모두 그렇게 날개를 펼치고 비상한 나의 아이들. 격한 포옹 후에 오래도록 손을 흔들며 집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나의, 그리고 모든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일 뿐이다.


고만고만한 기대와 두려움을 안을 채,

하나하나의 역을 지나치며,

부모에게서 멀어져 가는,

그렇게 가야만 한다고 노래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조금 다른 빛깔의 사연을 지닌

세상의 모든 코다들을 위해서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SI2PX18W0A



*덧붙임: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모티브가 된 책이 있다. 베르니크 풀랭의 <코다 다이어리>. 코다인 베르니크 풀랭의 에세이 혹은 소설. 그녀의 아버지는 아기 때 뇌염을 앓고 청각을 잃었다. 그녀의 엄마는 선천적인 농인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청인인데 딸도 아들도 농인이었다. 베르니크 풀랭은 청인과 결혼했고 낳은 아이 둘 모두 청인이었다. 농인인 부모의 딸로서 느끼는 청인 베르니크 풀랭의 슬픔과 고통과 행복이 담겨있는 작고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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