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병원에 가며 느끼는 미안함
- 다음 예약 날짜 언제로 할까요?
- 아무 날 아무 시간이나 다아 괜찮아요.
'다아'를 힘주어 강조하며 아무 때나 된다고 간호사에게 말하는데 왠지 어깨가 펴지는 이 느낌은 뭘까. 이상한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밀려온다. 시간 부자라는 자부심 같은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나는 대형 병원에서 다음 예약 시간을 정할 때마다 한없이 쪼그라들었었다. 먼저 내 수업 시간표를 보며 수업이 적은 날을 골라야 했고, 학사 일정을 뒤적이며 조퇴 가능한 날을 찾아야 했다. 간신히 날짜와 시간을 정해 말하면, '아 그날은 교수님 진료가 없어요.'라는 간호사의 슬픈 답변을 듣곤 했다. 평일에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연구년의 장점이구나 싶다. 그러면서 학교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생각했다.
교사 되고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파서 결근한 적은 거의 없다. 병원에 일주일정도 입원했던 기간 말고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침마다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태생적인 허약체질이라 늘 몸은 힘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단 소파에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좀 쉬었다 일어나야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 나다. 그런 내가 어찌 몸 아픈 날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교사들은 아파도 쉬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하루 학교에 가지 않으면 그 뒷일이 너무 큰 부담이다. 일단 내 수업 네다섯 시간을 다른 누군가가 들어가 줘야 한다. 이미 있는 자기 수업에 한 시간 수업이 추가되는 것은 부담이다. 교사들은 늘 다음 수업 계획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불쑥 수업이 생기면 난감한 경우가 꽤 많다. 서로 그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교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하다. 담임이라도 한다면 조회와 종례와 학급 학생 관리도 다른 교사 누군가의 몫이 된다. 게다가 결근으로 못했던 수업은 교환수업이 되므로, 덜 나은 몸으로 학교에 가서 못한 수업들을 하다 보면 두고두고 힘들다. 아파도 참고 학교에 가는 편이 낫다. 근처 병원에 갈 틈조차 없어서 보건실에서 약 타먹으며 버틴 날들이 수없이 많다.
감기 몸살 복통 같은 자잘한 아픔들은 근근이 버티고 주말에 아프면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큰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자꾸 생긴다. 이번에도 건강검진을 했더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 해라, CT촬영을 해라, 전문 병원에 가서 추가 진료를 받아라 하는 항목이 서너 개나 된다. 큰 병원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조퇴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수업을 오전이나 오후로 몰아야 하고 그러려면 또 동료 교사들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내가 4시간 연속 수업을 하게 되는 경우는 상관없으나 나로 인해 다른 선생님이 연속 수업을 하게 되니 한없이 미안하다. 어려운 부탁 잘 못하는 여린 마음의 교사들은 그렇게 혼자 속으로 끙끙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네다섯 분의 선생님이 병가를 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까지도. 조금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 쉬어 버리는 얌체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든 방학까지 버텨 보려 했으나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참다가 참다가 오히려 병을 키워 결국 병가를 낸 것이다. 신규교사가 심각한 성대결절로 소리를 낼 없었고, 교사 두 분이 큰 수술을 해야 했고, 누구는 뼈가 부러져 출퇴근이 불가능해서 등등.. 그리고 몸 아픈 것 말고 정신적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선생님들도 꽤 있었다. 몸 아픈 것이야 비교적 쉽게 다른 이들이 알아채지만 마음 아픈 것은 쉬쉬하게 된다. 많은 교사들이 꾹꾹 참으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몸이 아플 때 쉽게 쉴 수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은 또 다른 특수성이 있어서 더더욱 아파도 쉴 수가 없다. 그리고 교사 중에는 아픈 이들이 너무 많다. 하루에 수 백 명의 인간과 부대껴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치이다 보니 에너지가 바닥이 난다.
한 교무실에서 근무하던 언니 선생님이 작년에 명예퇴직을 하셨다. 오십 중반의 언니 선생님은 자꾸 여기저기가 아프셨다. 무릎과 뼈가 안 좋아지고 눈에 문제가 생기고 자궁에 문제가 생기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병원 갈 일이 생겼다. 수업 조정으로 후배교사들에게 부탁을 하고 교감선생님께 아쉬운 소리 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셨다. 그리고 결국 퇴직을 선택하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오십 중반에 건강 문제라는 큰 허들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학교생활이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야금야금 건강을 잡아먹는다.
참 어려운 직업이다. 스스로를 잘 돌보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 교사 간에는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교사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뾰족함이 적어지길 바란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낳고 몸의 병이 마음의 병으로 연결되어 교사들이 무너지는 상황들이 적어지기를.
나의 동료들이 덜 아프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