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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y 22. 2024

43. 나는 우울증일까?

-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한 번은 약봉지에서

약을 내어 먹으려다가 눈물이 났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약을 먹게 됐지?’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을 거다.

가는 병원마다 약은 많이 겹쳤다.

왜냐 하면 대체로 잠을 잘 잘 수 없었고

온 몸이 건조하고 혈액 순환이 안 되었고

위장 장애가 따라왔다.

식욕이 바닥을 쳤고

불안하고 머리가 아팠다.

불편을 넘어 세상 끝까지 온 듯 느껴져 무기력했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 땐 잘 일어나지도 못했을 때였다.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저 문을 열고 매일 나가서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하염없이 솟아올랐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이지?





멘탈이 급 강하하면 일어나는 일



병원 원장님은 잠을 잘 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수면(유도)제가 따라왔다.

먹어도 잠을 한 시간 채 못 자는 일이 생기면서

두 배의 약을 먹도록 처방을 내리셨다.

먹으면 자긴 잤는데 밤에 잠이 다시 안 왔다.


정신과의 증상이 맞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약을 먹은지 몇 날 몇 일 만에

계속 약을 먹고 생활한다는 것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단, 이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소에

효소, 호르몬, 면역, 영양, 식이, 그리고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약물 복용이란 방법으로

자칫 만성이 될 수 있는 정신증과 불면에서

풀려나리라는 것 또한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것은 선뜻 하기에 어려워서 그렇지만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내 마음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을

한 꺼풀 한 꺼풀 열어보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우울해지고

울퉁불퉁 일정하지 않아서 꾸준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바움쿠헨' 같은 것이다.

겹겹이 쌓인 나이테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자신이 살아온 기억과 경험이

고스란히 한 줄 한 줄 쌓이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교란되어 '수면이 박탈'

(‘우울증 약이 우울증을 키운다',

의학박사 켈리 브로건, 249쪽)당한다면,

자신이 하루를 살아내기가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 때 내가 할 일은 내가 알 수 있다.


나는 조금은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을,

주도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우울감이 컸고 빨리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가장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로 바움쿠헨, '나무 케이크' (사진 출처: '우린트레블러여행')


https://www.google.com/search?sca_esv=eea1aa0a97eb1fc4&sca_upv=1&q=%EB%B0%94%EC%9B%80%EC%BF%A0%ED%97%A8&tbm=isch&source=lnms&sa=X&ved=2ahUKEwjQzZmo-5-GAxWAa_UHHRuhBTkQ0pQJegQIExAB&biw=1536&bih=730&dpr=1.25





우울증은 몸의 병이다(위 책, 193쪽)



마음이 아픈데 몸이 멀쩡할 수는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정말 아프다면 몸에 이상이 온다.


내가 오래도록 몸 담아 온 직장생횔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관계가 끊어지면서 고립과 무력화 끝에

가만히 있으면 눈에서 물이 주르륵 내려오는

상황이 왔다. 때 맞추어 발병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멘탈이라고 하는 것이 약했겠지~ 또는

개인적인 상황이 겹쳤겠지~또는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오랜 병치료 끝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렌즈가 뿌옇게 변할 수 있듯

몸이 아프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아프다 보면

몸은 자기 시스템대로 온전하게 운영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이상이 생기고

빠른 속도로 온 몸에 퍼진다. 내가 그랬듯이.

강해 보이는 사람도 별 수 없이 무너진다.

건강을 찾아야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운동이 핵심



지금 나는 운동이야말로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움직이고 땀을 흘리도록, 즉 신체 자아와 활발히 소통하도록 만들어졌다. (위 책, 258쪽)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넘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과 가깝다.

마음 속에 뭐가 있나 하고 봤더니

선망해 온 ‘종목’(?)이 있었다.

평생에 걸쳐 몇 번 도전한 적이 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진척 없이 끝났었다.

이제는 일도 사람도 바쁠 게 없었다.

나는 병색 짙은 나를 이끌고 나갔다.

함께 넘어지고 함께 일어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한번 넘어지고 한번 다시 일어날 때

‘신체 자아’가 움직였다.


직장생활에서 고립을 겪고 얻은 심각한 스트레스가

내가 덜 넘어지기 시작하면서  작아지는 걸 느꼈고,

내가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일 년이 좀 안 됐다.


병원에서 처방 내려진 것과

운동으로 병의 원인이 된 스트레스를 상쇄시키는 것과 그 두 가지는 어느 정도의 효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운동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면

처방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도 불안하면 병행하면 된다.


내가 운동하는 나를 스스로 좋아하게 되고

운동에 관한 화제를 꺼내는 게 즐거워지면 그래,

거의 다 온 것이다.

위 책에서 켈리 브로건은 갑상선기능 저하증에 대해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인 '신지로이드'가

갑상선 기능을 정상으로 돌리는 해결책이 못 된다(143쪽)고 말한다.

흔히들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

갑상선 호르몬에 말썽이 생긴다.

뇌는 생각을, 생각은 마음을,

그리고 종당간에 몸을 해친다.


내가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는

뇌가 내렸지만, 그것을 아는 순간부터

나의 사회적 효능에 대한 깊은 의구심이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부심 강한 나를

온 몸이 아플 때까지 흔들어 놓았다.


누가 우울증이 정신질환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우울은 그 사람의 경험 밖에 있다.





허투루 가는 시간은 없다고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무수한 생각이

땀을 쏟고 운동을 마무리할 때까지

문득 문득 떠오르곤 했는데...


학창시절 A라는 내 친구로 믿었던 아이가

B라는 내 친구로 믿었던 아이와

나를 빼놓고

만나고 어울리고 함께 여행한 걸

나중에 알았을 때

내가 그걸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걸 슬퍼해야 할 일인지조차 혼동될 정도로

나는 심리 정서적으로 어렸다.

뭐긴 뭐겠나. 그 B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을 때

나는 베프라고 믿었던 A에게 다른 두 친구를 빼앗기고 소외당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오랜 동안 일만 하고 있었을 때까지 잊고 지내던,

그처럼 낡고 잘게 부수어진 기억을,

잊은 줄 알았던 안좋은 기억을

다 찾아서 그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그리곤 맘껏 A를 욕해 주고

그옛날식으로 주고받은

- 우리 사이 ‘우정’을 나까렸던 -

손편지 다발을 뿌려주고는

과거의 불쾌한 기억에서 빠져 나왔다.


만약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정체된 상태의 나는 나를 지배하는

우울 정서의 하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참고 참아서 병을 키운 습관들을.


그런데 약물도 부작용, 운동도 부작용(?)이 있다.

남들이 뭘 하건 일에 빠져 살았던 내가

이젠 ‘운동에 미쳐’ 그만 근육의 말썽을 낸 것이다.

왜이리 나는 탈이 많은지!


그런데 또 말이다. 이 병은 고칠 수 있고 고쳐 가면서

좋아하는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오케이.


결론적으로 팩트를 말하자.

약을 먹어야 하고 약물 복용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경우 약물로 우울을 극복하되.

나처럼 넘어지고 일어나는 무한 반복을 통해

몸의 변화를 느끼고 이어서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변화하는 케이스도 있으니

그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만 우울을 벗어나자.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하면 된다.


나는 우울감, 무력감, 만성이 될 수 있는

염증과 메스꺼움과 울렁임 기타 등등에 시달리며

사람이 사람을 해치려고

마음 먹고 저지른 위해에 의해

당장 죽지만 않을 뿐인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그것이 정당한 업무 추진을 가로막고

일신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한 구성원들의 업무 방해와

느슨한 조직 관리에서 배태된 공무상질병이었음을

승인받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 하나가 쉽지가 없다. 말해 뭐하겠나.

세상 어떤 일도 ‘쉬운 일’이란 없다.


균형은 영속적이지 않다.

나로선 내 삶에서 가장 균형잡힌 상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과장 같은 상사를 만나 내 모든 커리어를 잃었다.

그러나 어떤 시간도 허투루 가는 법은 없다고 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바로 ‘지금 내가’ 정의한다.


그것으로 족한 오늘.


현실을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나로

컴백하는 노력을 쉬지 않는 오늘을 풀로 채워 보자.

오늘은 바움쿠헨을 먹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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