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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y 19. 2024

42. 마음이 아픈 것은 몸에 직결된다.

- 병이 나 보면 안다.


출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직장인이라면 많이들 갖고 있다.

내 주위에 계신 지금은 명퇴하신 분이 말하기를,

직장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아침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새벽부터 잠을 여러 번 깨서 매일 설쳐야 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게 하나하나 직장생활의 무게다.

“내일 나가야 돼.”와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돼.”의 차이는 크다.

 

일반적으로는 이 정도라야 한다.

심적 부담을 더 받을 일이 생기거나

아예 ‘생로병사’ 전 단계를 왕복하게 된다면

사달이 난 것이라고 본다.





‘문동은‘(송혜교 분)처럼




내가 발행한 첫 글은 ‘공무상요양 승인 신청이 거부됐을 때’ 받은 충격을 담은 것이었다.


그후로 시간이 꽤 흘렀고 내 삶도 흘러왔다.


따돌림은 한 번 당히면

잊히지 않을 문신이 마음에 남을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처럼

온 몸에 상처가 남은 경우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다.


문동은처럼 할 수 있을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내가 과장과 그를 밀어 준 ‘각자 당’(자기를, 자기만을 위한/ 자기만 이유를 아는 무리를 내가 통칭해 부르는 말, 극단적으로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 특징임.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과 모종의 컴플렉스가 해체되지 않은 채 몸만 어른이 된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자기 말만 하곤 했다. 힘들지만 요약해 보면 자기만 일이 많고 자기가 다 잘 안댄다.)에게


“너희들은 밤에 잠이 잘 오니?”라고 묻는

장면을 연출은 해 봤다.

아직 출연은 못 했다.

문동은도 그랬을 텐데 

그들을 다시 본다는 게 끔찍하게 싫다.

인간도 아닌 이들. 사람을 따돌린 것들 따위.





밥이 뭔지



밥이 뭔지, 라고 하면서

무릎을 세워 다시 일어나 본 적 있으신지..?

애인과 방금 헤어져 ‘내가 왜 그랬을까?’

탄식과 시름에 빠져도 뱃속 신호는 울린다.


따돌림은 ‘인지’ 전에 ‘감지‘된다.


사무실의 공기가

 ‘내 것’과 ‘내 것 아닌 큼큼한 것’으로 반분된다..

내가 옆을 지나갈 때

사무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는 사람들.


내가 없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대화에 신이 나 있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예전처럼 ‘식사 하시죠’라고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빠져 나가는 사람들.


‘나는 안 보인단 말인가?’

‘끼니를 혼자 어떻게 해결하지?’

‘끼니를 뭘로 해결하지?’


커피전문점 일회용 잔을 손에 손에 들고

깔깔깔 웃으며 돌아오다가

사무실 한 가운데 덩그러니 앉은 나를 보면

방금전 웃음기를 삭이기 위해 이 악물

각자 자리로 흩어지는 사람들.


강제로 끼니를 걸르고 소통이 먹통이 된 상태에서

일자리가 나에게 주는 위험신호는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너 이러다 죽을라’


일도 안 되고, 살기도 다 죽게 된 상태에서

나는 한번 쓰러지자

아예 일어나는 게 무서운 상태에 빠졌다.


돌이켜 보면 ‘한 끼니’가 구명줄이었고

나의 끼니를 거르게 만들고

과장이 사람들을 갑자기 끼고 나가기 시작한 게

. 쟤가 살아 나가는지 어디 보자 하면서 과장이 날린

신의 한 수였다.





마음이 아픈 걸로 끝나지 않는다.



새벽 잠을 설쳐서 출근을 맞추어야 하는

근대 이후 피고용 근로자들이 가장 억울해 하는 점은

신체가 그 시간에 맞춰져 있다 보니

8시 9시 되도록 푹 자 보고 싶은 주말에도

5시 좀 넘으면 눈이 떠진다는 거다.


불려 나갔던지 선택해서 나갔던지

일단 나가기 위해

왕복 두 세 시간이 걸리는 통근길에 매일 오르는  게

직장생활의 첫 시험대이다.

적응을 했다 해도 간혹 가다 알람이 꺼져 버린 아침에 뒤늦게 눈을 떠서 혼쭐이 난 경험담은 여럿 있다.


만약 그 직장생활의 첫 타임인 아침시간대에

만약 일어나지 못한다면

만약 온 몸이 아프고 온 피부와 신경이 ‘출근해서 그들을 마주친다‘라는 현실을 거부한다면

그래서 아프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인가.


내 공무상요양 승인이 거절된 것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어 일어나 출근 시간대 교통 혼잡을 뚫고

사무실에 도착했어야 하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을 내가 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한 사람들이 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가 공무원일 것.


과연 잘못된 건강 관리의 결과인가.

일을 할 수 없게끔 야금야금 파고들어

결국 병이 나서 못 일어나게 되자

쉬 쉬 하면서 책상 위 노트북의 채팅 창만 응시하고 있는 자들은 페어 플레이를 했나.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 되어 있고

마음 정도는 아프나 마나

너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줄을 섰어.”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 같고

나는 아직 과장 패거리를 직면했을 때

특유의 욕지기가 동해서 울렁거림을

다시 겪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다.


정신 테러는 반드시 신체의 세포를 공격하는 일이고

왕따의 가해는 반드시 대상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의도를 갖고 저지르는 일이다.


의도를 가지면 부분 성공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고

의도가 강렬하면 결국 승자가 나온다.


결국 이겼다고 생각하고 인생을 잘 살았다고 자부할 왕따 가해자들은


그런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왕따 당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라고 권고하기나 하는

인사혁신처의 공무상요인 승인 심사 기준에 의해,


그리고 열혈 충성 맨이었던 성대리가

울렁거림으로 일반식을 못하는 동안에도

쑥덕거림이 끊이지 않았던 해당 기관에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 흔한 ‘따돌림 방지 교육’조차 단 한 번 실시하지 않고

저들끼리 힘의 서열을 조정하며 마구 돌아가도 상관없는 공공기관의 태만과 승자 독식주의에 의해


왕따 가해자들은 옹호되고 양산된다.


계속 그러라는 것과 같다.


아픈 사람에게 ‘너는 아프지 않다. 넌 너 때문에 아픈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 ‘인사혁신처’와 공공기관 ‘따돌림 신고처(라고 해 두자)’의 인식 수준인 한


누구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알아도 모른 체 하는 게 공식이 되고

‘선출직 정치가’가 그토록 선동한 혁신은

구호에만 머물 것이다. 뒷걸음질친다.


https://brunch.co.kr/@685cc1cc752d4bd/233


이번 한 주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나 본인이 아파도 이렇게 오래

깊은 마음 속에서 아픈데

자식이, 내 무엇을 내 주어도 되는

소중한 따님이 아프신 이야기를 읽고


제 인사혁신처 안일/늑장 대응에

목이 쉬어 가는 이야기에

링크를 답니다. 그리고...

응원하는 작가님들이 한분 한분 늘어가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다 했던

저를 용서하기 시작합니다

아파서 누워 생활할 적엔 그 자체를 부정하고

더 몸부림쳤더랬습니다.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요.


다음 글은 이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가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울증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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