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주소를 확인하다.
미국 대선은 다시 트럼프에게 활짝 웃어 줬다.
대항마가 준비되지 않은 사이
준비된 그가 돌아온 것 같다.
결과 확정일부터 내내 트럼프 당선이 미칠 영향만
갖고들 쓰고 말하기 바쁘다.
내심 미국 대통령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라는
생각도
우리 수출이나, 수출 관련 기업에 다니는 사람의
연봉이나 그로 인해 오르거나 내려갈 주식, 부동산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리더는 말을 듣고 나서 말을 해야 한다.
리더라면 그렇다.
리더는 들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아야 한다.
리더라면 조잘조잘 이 말 저 말 옮기지 말아야 힌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담고 있지를 못하기 일쑤다.
리더는 도전을 받아들이고 다시 제안할 줄 알며
꾸준히 협상해야 한다.
그가 신경 쓴 것은, 발목 양말을 접어 신던
학생 시절부터 일등을 잃지 않는 일이었다.
유감이게도 일에는 석차나 등수, 그런 게 없었다.
그리고 어디나 리더는 어차피 혼자였다. 일등할 필요가 없었지만 과장이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었다.
과장 외에도
자신의 힘을 위력 삼고 몹쓸 말을 일삼던 기관장이
생각난다.
걔 중에는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 (너를) 묻어 버릴 수 있어.”라는 말이 있었고 그런 말을 예사로
하고도 그는
자연히 사실은 왜곡됐고,
없는 일이 꾸며져서 보고됐다
그의 방 안에서는 직원의 사생활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고, 공방이 오가는 동안 부속실을 통해 새어
나온 이야기가 다시 사내로 퍼져 나갔다.
나와 몇몇은 그가 임기를 채우고 떠나길 염원했지만
이번에는 웅크린 채 ‘아무 일도 없다.’라는 방관형이었는데, 눈 앞에서 언어의 식칼이 날아다녀도
정면만 바라보며 주먹을 쥔 채 발언을 아예 못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주 하신 말이 생각나곤 했다.
그들을 거치면서 나와 같이 무서워 달달 떨기만 하던
사람도 단련이 되었다. 호통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걸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글쎄다.
‘바닥이 좁다.‘는 게 어려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내게는
무서운 말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아.’라는 말도 있었다.
무슨 씨족 사회도 아닌데
그만큼 좁은 사회, ‘고인 물’이라는 것이다.
나처럼 왕따 피해를 갖고도
스스로가 더 움츠려야 하는 이유도
결국 서류가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날라 다니는
이 분위기를 개인이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왕따 사건 가해, 가담자를 이니셜로 처리했다.
병원을 찾아디녔지만 막상
소송에 필요한 소견서 작성을 모두 ‘미안하지만 거절’당했다. 책임을 추궁받을 만한 일은
좋으나 나쁘나 의사선생님들이 원치 않으신다는 걸
알았다. 아무 감정도 그에 대해 느끼지 않았다.
다시 그 때로 돌이키는 ‘기억’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시간만 되면 운동을 갔다.
자전거는 시속 20을 넘기려 최대한 밟아 탔다.
과장의 외마디가, “내가 너를 가만 둘 것 같아?”라는
빽! 질렀던 목소리 듣기 싫은 그 말마디가
어제처럼 들리면
나를 자꾸 그 날로 데려가서
나는 달아나려고 했다. 가능한 한 빨리.
증상이 되돌아 와서 ‘안녕?’ 하는 날도 물론 있었다.
한창 무덥던 여름을 지나고서
‘환자분은 지금 기력이 없습니다.’라는
검사 결과 설명을 듣고 있는 내가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쓰지 않던 근육을 무리하게 연속 사용해 얻은
운동통은 덤이었다.
브런치 작가님들 가운데 종종 ‘지치고 힘드셔서’
휴재하고 쉬어 가시는 걸 보는데
백 분 이해가 됐다. 나도 이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수차례 반문해 봤다.
그렇게 나는 써 왔다.
한 글 한 글이 저마다 다르고
그 날 그 날 새로왔던 고통의 다른 버전이었다.
내가 쉬지 않더라도 ‘고통’은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쉬지 않는다면 몸만 더 축날 뿐이다.
자꾸 혹사하면 훅 간다.
곧 있으면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데.
현재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연재를 조만간 ‘출항’하는 데 집중!
요새 인테리어 공사에 ‘턴 키’, ‘턴키’ 하길래 찾아봤다.
시공과 진행 일체를 계약 업체에 일임한다고 한다.
나는 정말이지 ‘턴키’받고 싶다.
내 인생의 열쇠를 갖고 싶다.
브런치는 에필로그 포함 백 회로 마무리하고
소식이 있으면 이어서 연재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
마음 같아선 다 나을 때까지 ‘병 받고 약 받고’를 이어 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낯설은 항구를 향해
배를 출항하는 기쁨을 누릴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머무는 공무원 사회와 이 ‘느슨한 조직’에 대해
작은 머리를 다 하여 고민해 왔다.
사석에선 ‘가망이 있’니 ‘없‘니로 초록 병을 더 불러 댄
날들이 있었다.
승진 경로, 그 몇 안 되는 트랙의 허와 실, 점수 가산의 치졸한 방법과 그에 동반한 야비한 경쟁까지도
어떤 사기업 못지않을 때가 있었다.
주위를 물리치려고 냅다 달려 간 사람들이다.
아무 ‘성과’가 없어도
한 번씩 눈 잘 감고
내도록(‘내내’의 사투리임.) 입 다무는 조건을
충족해야 길게 가는 이 조직이
어떻게 아름답게 될 것인가. 여기에 창의성이란 없다.
나의 길이 아니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공공이 꼴랑 자존심이나 자격을 거론하는 동안
계속 떨어지기만 한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일을
하고자 했다. 모든 게 끝났지만 말이다.
이제 ‘개인적으로’ 그 생각을 실현하고 싶다.
내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에게선 ‘한숨’만 쉬었는데
마지막 글 백 회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리포트할 수 있기를.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 모두 복 받으실 거에요.
누가 요즘 세상 재미없는 ‘공무원’을 쳐다나 보나요?
그래서 더욱더 작가님들 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