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편한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
나 좀 괴롭히지마
요즘처럼 편한 때가 없다.'
못들으면 글쓰기라도 해 보자는
내 말에 엄마의 반응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 하루
편하다는 말만 계속 하셨었다.
앞산으로 운동 다니고,
뭉이(강아지)랑 놀고,
집안 일 하고 이대로 좋은데,
뭘 자꾸 하라고 하느냐고
투정을 부리셨다.
다시 생각하고 애쓰며
몸부림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정확하게 콕 집어 말씀하셨다.
왜 일기도 안쓰냐는 내 말에,
'쓰면 뭐하냐?
내가 사는 삶이
날마다 똑 같은데.
날마다 똑같은 소리
늘어 놓는 것도 싫어서
그만 하기로 했다.'
어차피 늙으면
다 안되는 일인데
왜 그렇게 몸부림 치고 살았는지.
엄마가 몸부림쳤던
시간이 부질없고,
남들이 노인네가
헛짓한다고 했을 거라고. .
엄마의 자조 섞인 한탄은
끝이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언제나 삶에 적극적이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 해서
당신의 삶을 꾸려가는
분이었다.
엄마의 삶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학습이 되었고,
나이가 들어가도
우리 3남매는 지금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80 이 넘어도 사그러들지
않던 그 호기심과 열정이
청력을 잃으며
엄마를 떠나갔다.
무기력과 자포자기.
그 때 엄마의 정확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정말 치매가 올 거라고.
어쩔수 없이 협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운동 잘 하고,
식사 잘 하시고,
며느리가 좋은 영양제까지
챙겨드리니 몸은 이렇게
건강한데 치매가
오면 어떡할거냐고.
건강한 사람이 치매가 되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10년 가까이
치매 시어머니를
수발하고,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경험을 이렇게
써먹을 것은 아니었는데. .
어쨌든 엄마에게는 통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경험을 말하는 딸의 말에
겁을 먹으셨던 것 같다.
'그래, 해 보자'
막상 글을 쓰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 지,
그냥 깜깜할 뿐이라고
답답해 하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춘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예전의 엄마는
날마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다름을
찾아내시던 분이었다.
옥상에서 키우시던
텃밭의 채소
하나하나로도 글을
쓰시던 분이었는데..
엄마의 매일의
삶속에서 정말 작은
것들도 엄마의 글감이
되었었는데..
딸아이가 주제 일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바로 교보문고로 달려
가서 주제 일기를 샀다.
시를 좋아 하는 엄마를
위해 나태주 시인의
시와 함께 엮어진
주제 일기를 선택했다.
잠시 들린 핫트랙에서
'자서전을 쓰다'라는 노트를
보고 함께 구매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생각해
보며 글을 쓰도록
페이지마다 주제를
주는 구성이 지금의
엄마에게는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또 그 길로 차가 밀리는
길을 2시간을 운전하며
엄마에게 달려갔는데. .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상상하며 가는 그 길이
얼마나 날아가는 것
같았던지.
그런데. .
주제일기와 '자서전을 쓰다'를
받은 엄마의 반응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뭘 이딴 걸 샀냐.
넌 돈도 쓸데없는데 쓴다.
너나 갖다 써라'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
세월은 지났어도
옛날 양반집 아기씨였던
엄마는 언제나 말이 고왔다.
태어나서 엄마 입에서
이렇게 말이 막 나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언제나 엄마 감정대로
말하지 않고, 말을 골라서
하시는 분이었다.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좋지 못한 징조다.
한편으로는 허리, 무릎,
어깨 통증으로 오랜 시간
운전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아침 일찍부터
교보문고를 들러서
밀리는 길을 달려온
나에게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가슴 저 밑에서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하고,
이미 엄마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무섭기도
한 감정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다시 협박도 하고 달래고. .
요양원에 가시면 자유가 없다.
나가고 싶어도 못나간다.
마음대로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다.
지금처럼 철마다 산으로
다니며 자연을 누릴 수도 없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먹는다.
가족들이 갖다 줘야만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정오쯤 시작한
엄마와의 실갱이는
오후 5시경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이미 편도가 부어서
더 이상 말을 할 힘도
없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되는데. .
다시 기도하면서
엄마에게 매달릴 때,
갑자기 엄마가 '할께' '해 볼께'
그리고는 '고맙다'
엄마는 무서웠단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예전처럼 글을 못쓰게
될까봐 무서웠단다.
영영 엄마의 삶이 이렇게
끝났다고 도장을 찍게 될까봐,
정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절망을
느낄 것이 두려워서
피했다고 하셨다.
이미 엄마 스스로 예전처럼
생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내가 요양원 생활을
너무 적나라하게 말해서
그게 더 무서워졌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시 생각하고 애쓰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싫지만,
요양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더 무서웠다는 얘기였다.
글쓰기를 끝까지 거부하던
엄마가 결국 항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