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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대리 May 12. 2024

두 번째 은행원

'물이 깊어야 배를 띄울 수 있다'

'똑같은 삶을 한번 더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다면 어떤 기분일까?"


간혹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본인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은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를 다시 살아가며 새로운 '나비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영화 같은 일이 내 인생에도 일어났다..


나는 정확히 7년 만에 다른 시중은행에서 '2회 차 은행원 인생'을 시작했다.

처음 신입행원 연수 첫날 상황을 마주쳤 마치  장면을 어디서 똑같이 본 것 같은데 라는 '데자뷔'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프레이로 고정한 듯한 헤어스타일, 몇 번 입어보지 않은 듯한 새 정장, 여행용 트렁크를 한 손에 들고서 어색한 기류 속에 서울역 앞에 모여있는 신입행원 무리들..

7년 전, 바로 옆 건물 다른 은행 신입행원 연수 때 보았었던 모습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렇게 나는 7년 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 온 기분을 느끼며 '두 번째 은행원의 삶'을 시작했다... 연수원으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이 신기하고도 감사한 상황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같은 상황에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 같다'

나는 그렇게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2개월 동안의 신입행원 연수를  한 번 받게 되었다.


연수원에 들어와서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했던 것 것들이 많았다. 어차피 간판만 다를 뿐 똑같은 시중은행이니 모든 것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분위기와 교육 방식까지 모든 것이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나에게 더 흥미로웠던 것은  90대생들 입사동기들이었다.  서태지와 HOT에 환호했던 밀레니엄 아저씨에게 열 살 차이 나는 MZ 동기들과의 2개월간의 합숙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가령 예전받았던 신입행원 연수조별 활동을 통해 함께 하는 팀워크를 강조했었지만, 이제는 똑같은 조별활동을 해도 팀보다는 개개인의 색깔이 보이는  더 느껴졌다. 단적인 예로 식사를 하러 갈 때조차 연한 차이들이 있었다. 조별로 함께 열 맞춰 식사를 하러 가고 식사의 끝을 마무리했던 과거와대조적으로 이번에 만난 동기들은 각자 편한 시간에 편한 사람과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팀 단위 조별 과제를 할 때도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느라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 와중에 팀원들끼리 갈등이 생기는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다.  나 역시 동기들이 언쟁을 할 때는 재하고 싶었고 때로는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띠동갑 동생까지 있는 동기들 사이에서 괜히'나이 많은 꼰대였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여하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는 좀 후회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연수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형 또는 큰오빠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챙겨주었던 같은 조 동생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리고 이 친구들을 통해 처음 접해본 종족인 90년대 생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색깔이 좀 더 진해졌을 뿐 90년대 생들은 절대로 덜 착한 친구들이 아니구나'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지점을 가고 싶어 새벽까지 공부하는 동기들이 많았다. 아마 인사부에서도 그런 면학 분위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나고 나서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기에, 동기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즐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2개월의 합숙 기간이 지나우리는 각자 발령받은 지점들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데자뷔 같았던 시간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던 새로운 만남들.. 이런 감정이 차오를 때면 잊고 지냈던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한편으론 허무한 감정도 함께 생겨난다.

행복을 현실이 아닌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에서 찾게 되는 오류를 범하는 순간 다시 또 행복에서 멀어지게 된다..

회상에 근거한 불행감이 나를 엄습하기 전에.. 지금 행복해야 한다...

어두운 색 계열의 감정으로 마음이 칠해질 때면 언제부터인가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뇌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나는 첫 번째 직장생활을 실패했다. 유약한 마음과 준비되지  않은 사회성으로 힘들었던 시간들.. 결코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실패한 시간은 소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랬던 두 번째 사회생활..

트라우마 같았던 나의 과거를 극복하 싶었다.


그런 복잡한 마음과 함께 마침내 나의 두 번째 은행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지점 그리고 전혀 해본 적 없었던 기업대출 업무... 새로운 선배들과의 만남까지.. 이제는 익숙해진  '또 다른 낯선 시작'이었다.

예전 처음 입행을 했을 때의 설렘이나 열정은 없었지만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잘 다니고 싶다'라는 마음은 어느 때보가 강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쉽진 않았다.  조직의 문화 차이인지 시대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과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각자도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조직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날 서있는 방어 기제와 본인의 안위를 위한 편 가르기가 몸에 탑재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팀'으로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직급에 상관없이 아예 일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이 일을 하나 했으니 너도 하나 해"라는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신입행원을 대했다. 이 선배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티끌만큼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은 업무량이 과다해지게 되고 업무량이 과다해지면 사람인지라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 은행이다. 그리고 돈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곳에서의 실수는 곳 '금전배상 혹은 사고'를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오히려 앞장서서 자기 동료 또는 후배를 '마녀 사냥'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옛날에 다니던 은행에서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던 선배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 바로 윗선임은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온 신입이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 정도 어렸다. 내 눈에는 뭐든지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사회 초년생 같아 보였는데, 옆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걸 보는  안쓰러웠다.. 선배들한테 가스라이팅 당해도 꿋꿋이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는데 많은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가 다른 지점으로 떠나자마자 그런 행동 들은 고스란히 다음 타깃인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오로지 지점 실적에만 관심 있는 지점장..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

업무를 알려주지 않고 일을 떠넘기는 선까지..

오로지 혼자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런 와중에 업무 실수를 통해 받게 되는 고객의 욕과 금전배상은 덤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지점에 인성이 너무 별로라고 생각했던 어린 여직원이 예의 없게 고객이나 혼잣말로 욕을 해도, '카드 판매'를 잘하고 지점 실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선배들은  행동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올바른 위계질서라고 생각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조직관리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험으로 쌓이게 되면서  이 조직에서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듣기 싫은 말이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고 느꼈다.

물론 이런 과정들이 첫 번째 은행생활을 할 때도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와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때는 서로에게 '인류애'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인성과는 별개로 본인이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책임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내가 첫 번째 직장생활을 통해 배운 것 중에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힘들어도 사람에게 기대면 안 된다..

사람은 원래 생각보다 별로다.. 그게 바로 힘들어도 사람한테 기대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 매일 살고 있는 나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 방어막을 두텁게 만들고  남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은  타인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하는 것 모두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에게는 똑같이 싹수없는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가장 힘이 들면서 내 인성과 성격이 하향 평준화 되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직장에 있는 모든 순간이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옛날처럼 습관적으로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두 번째 은행에서의 직장생활은 '달라진 나'의 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었다사실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연봉을 얼마 주는 곳이든.. 나 다움을 잃어가는 환경만큼 최악인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이 조직 안에서 나의 남은 미래를 보내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기대가 크지 않으면 실망도 크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나 같은 휴머니스트 인간에게는 당히 냉소적이고 적당히 배려하며 사람들을 대하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나와는 너무 맞지 않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아내가 원했던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왔지만 나의 마음은 정작 다시 불안정해졌다.

불에 데어본 사람은 불이 뜨거운지 안다. 그리고 화상을 입었을 때의 쓰라림도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 실수로부터 배운 것들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마음의 상처 없이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남게 되었다..


옛말에 '물이 깊어야 배를 띄울 수 있다'라고 했다. 얕은 물에는 절대로 접시배 하나조차도 띄울 수가 없다는 것이 내가 직접 검증한 인생의 진리이다.

리고 인생의 큰 물을 채우려면 거친 풍파를 거치는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조용히 나만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가슴에 작은 종이배 하나조차 띄울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인생의 낭비'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각마음의 바다에 작은 종이배 하나라도 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시련의 시간과 고난의 물살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의 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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