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솜에게
오늘 오전은 각자 가고 싶은 곳에 가기로 했어. 어차피 내일이면 너와 헤어져 혼자 다닐 텐데 좀 더 같이 있을까 후회되기도 해. 뭔가 오전에 따로 다니고 오후에 만나니까 ‘알쓸신잡’ 촬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 편지를 통해 오전을 나와 함께한 것처럼 느끼게 해 줄게!
첫 일정은 ‘프라하 국립박물관’이었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나중에 찾아보고 말해줄게. ‘프라하 국립박물관’ 1층에서는 체코의 역사를, 2층에서는 체코의 문화를, 3층에서는 해상 및 육상 동물들을 다루고 있어. 미국의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유럽섹션’에 있는 기분이더라. 진짜 유럽건축물이라 그런지 디테일과 퀄리티가 더 좋긴 하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3개야. 계단이 교차하는 아늑한 중앙공간, 판테온을 연상시키는 돔천장, 조금은 차가운 느낌의 직사각형 공간이지.
첫 번째 공간은 따뜻한 느낌의 대리석과 페인트칠 한 벽, 카펫, 그리고 유리천장 아래로 은은하게 비추는 자연광이 인상적이었어. 대공간에서도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지. 두 번째 돔천장이 있는 공간은 멋졌지만, 뭔가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마지막으로 1층 로비의 일부였던 직사각형 공간에서는 누적된 피로를 환기할 수 있었어. 3개 층 높이로 뚫린 ‘보이드’ 공간에 휴식용 테이블만 있었지.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어도 뮤지엄엔 꼭 필요해. 어둡고 답답한 전시공간만 계속되면 관람객들은 금방 피로해지 거든.
무엇보다 로비 중앙에 전시되어 있던 공룡 뼈 모형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얼굴이었어.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 내 껍데기가 아무리 청춘이어도 속이 늙으면 의미가 없구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저렇게 예쁘고 순수한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
다음 일정은 ‘무하 뮤지엄’이야. 전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알폰소 무하’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너무 설렜어. 참고로 ‘알폰소 무하’는 ‘아르누보 시대’의 아이콘이야. ‘아르누보 양식’이 유행한 기간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로 아주 짧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스타일이라서 꼭 한번 보고 싶었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장식이 되게 많고 화려해! 미술품뿐만 아니라 건축, 포스터, 공예품까지 실생활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해.
‘무하 박물관’은 생각보다 작았어.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수준이었지. 내부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어. 사립재단의 전시라서 그런가, 상업적인 느낌이 드네. 전시장의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워서 졸렸어. 전시장 끝에는 ‘무하’에 대한 영상을 보는 공간이 있었는데, 어두운 곳에서 영어를 들으니 졸리더라. 너한테 설명하고 싶어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네..? 뮤지엄의 공간은 별로였지만 작품은 예뻤어. 어린 시절 ‘초초’가 봤으면 더 좋아했을 것 같아. 기념으로 예쁜 엽서 한 장을 산 뒤, 너와 만나기 위해 어제 저녁에 갔던 광장으로 향했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전화기 너머 “너 시계탑 보여? 빨간 모자 보여?”라고 외치다 보니, 어느 순간 네가 보이더라. 우린 서로의 오전을 나눌 새도 없이, 사람들 속을 빠져나오기 바빴어. 우린 최고의 뚜벅이 이기 때문에 ‘블타바 강’을 건너 ‘프라하 성’으로 향했지. 프라하 성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꽤 걸어야 했어. 당 떨어질 때쯤, 언덕 중간에서 아이스크림 굴뚝빵을 사서 먹었지. 체코 하면 굴뚝빵이라는데, 생긴 것에 비해 맛있진 않았어. 관광지라서 그런가?
성에 다가갈수록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 역시 예쁘다. 프라하! 모두 빨간 지붕이야. 어제 간 체스키크롬로프의 지붕도 그랬는 데. 체스키가 프라하의 미니 버전인 것 같아. 제주도의 우도 같달까?
프라하 성에는 궁전 말고도 ‘비투스 대성당’이 있어. 대학교 1학년때 과제로 ‘비투스 대성당’을 그렸던 기억이 나. 그때 그 성당이 이거라니! 너무 신기해! 우리가 너무 늦게 올라왔는지, 폐장이 얼마 남지 않아서 대성당을 제외한 다른 유적들만 돌아봤지. 프라하 성이 폐장해도 하늘은 여전히 밝아. 유럽의 5월은 정말 해가 길구나.
우리는 프라하성 꼭대기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또 걸어서 내려갔어. 우리의 밤은 아직 멀었지! 길을 걷다 프라하에서 유명한 맥주샴푸도 구경했어. 그렇게 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다시 까를교에 도착해 있어. 어젯밤에 본 까를교와 노을이 지는 지금의 까를교는 다른 곳 같아. 해가 다 저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어. 저렴한 식당 중 구글 평점이 좋은 순서로 찾다보니, 타코집이 나오더라. 미국여행때 많이 썼던 방법이야.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 타코가게가 되었지! 구글 평점처럼 맛있었어. (타코에 석류가 올라간건 당황스러웠지만…)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내일 아침에 네가 먼저 떠난 뒤에, 나는 프라하를 더 둘러보려고. 2주 동안 같이 여행해줘서 고마웠어! 남은 2주도 각자의 여행지에서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