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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Feb 21. 2024

그때랑 지금

프라하

초초에게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너와 떨어진 날이야. 그동안 함께 있었던 것이 든든하긴 했지만,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어. 가본 여행지에 다시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혼자 이곳을 곱씹어보고 싶었거든. 숙소 근처에서 너랑 헤어지고 정말 오래간만에 혼자의 편안함을 느꼈어. 조금 서운하려나? 근데, 나는 혼자가 된 그 순간 진짜 프라하의 추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어. 


너랑 헤어지고 올드타운으로 들어서서 천문시계 종 치는 것을 보겠다고 달렸어. 화창한 날씨, 많은 인파들로 활발한 올드타운이 나를 업시켜 주었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것 마냥. 원래는 프라하 화약탑 앞에 있는 백화점으로 곧장 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정각에 가까워졌다는 이유 하나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 시계탑으로 갔어. 미끌거리는 돌바닥을 세차게 밟으면서 말이야. 그 덕에 프라하 길거리를 더 눈에 담고 더 느낄 수 있었어. 그때의 프라하는 엄청 활기찼어.

 서점도 가고, 비눗방울 아저씨도 만났어. 비눗방울의 몽글거림을 보니까 내 마음도 몽글거렸어. 비눗방울의 궤적을 따라서 뛰는 아이들도 폭닥한 기분에 빠지게 해 줬어. 그래서 앞에 있는 모자에 동전을 넣고 싶었는데, 가난한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동전 하나도 너무 컸어. 그래서 내가 느낀 행복을 그분께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워. 

 아쉬움을 뒤로하고 2년 전, 친구랑 다녀온 백화점에도 다시 가봤어. 변한 것이 없더라. 한국은 한 달만 여행 다녀와도 우리 집 앞에 건물이 서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해. 백 바퀴를 돌겠다는 일념으로 백화점을 돌았어. 자금 사정도 여의치 않으면서 말이야. 날 위한 선물은 사지 못하고, 선물만 골랐어. 원래는 2년 전 겨울에 먹었던 디저트를 먹으려 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훅 흘렀더라. 그래서 너를 만나러 화약탑으로 발걸음을 옮겼지. 


 잠깐 떨어졌다 만나는 데 반갑더라. 타지여서 그런가? 내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긴 이방인이어서 그런가? 익숙한 모습이 보이자마자 마음이 확 놓였어. 혼자 다니는 동안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나 봐. 그렇게 우리는 함께 더운 날씨를 견디며 프라하 성으로 향했어. 


 분명 이미 와본 곳인데, 내가 아는 곳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졌을까? 계절이 달라져서 와닿는 게 다른가 봐. 겨울에 왔던 프라하는 온 세상이 하얗고 조금은 차가웠어. 5월의 프라하는 따사로운 노란 햇빛이 내리쬔다. 프라하가 품고 있는 색이 그때랑 지금, 아주 달라. 그때랑 지금 똑같은 것은 변함없이 아름답다는 것. 그것 하나야. 그래서 내가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정말 잊지 못할 것은 비투스 대성당 전망대에서 내려오던 남자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를 부른 거.


‘Look down, Look down Don’t look ’ em in the eye.’ 


아직 올라가야 할 길이 멀었던 나는 쓰러질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헥헥거리면서도 깔깔 웃었어.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노래가 되겠지? 레미제라블 영화만 보고 뮤지컬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얼른 한국에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 진짜 레미제라블 뮤지컬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어.


  전망대는 즐겁게 올라갔다 왔지만 아쉽게도 비투스 대성당 내부는 이번에도 들어가지 못했어. 나는 프라하에 두 번이나 왔는데 한 번을 안 들어갔네. 사실 아쉬움은 없어. 원래 여행지에 갈 때 아무런 기대가 없어서 그런가 봐. 근데 네가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아, 조금 더 찾아볼걸 하는 후회는 들었어. 다행인 건 너에게 내일 반나절이 더 있다는 거. 그래서 너의 여행에 아쉬움이 남지는 않겠다는 거야.  

 그래도 한 번 와본 여행지라고 어디에서 보는 전망이 예쁜지 여전히 기억이 나더라. 오늘의 프라하가 겨울에 왔을 때보다 더 예뻤어. 스타벅스 담장 모서리에서 보이는 풍경도, 걸어 내려가며 만나는 풍경도. 노란 햇빛이 내리쬐어서 붉은 지붕을 더욱 빛나게 해 주더라. 


 오늘은 내게 추억을 찾아가는 날이었어. 너에게는 추억을 만들어가는 날이었겠지? 추억을 찾으면서, 너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벅찰 만큼 행복했어. 언젠가 내가 또 프라하에 온다면, 너랑 함께 오지 못했다면, 너에게 영상통화를 걸게. 같이 걸었던 이 길을 멀리서 함께 추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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