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친구!
솜에게
오늘은 너랑 헤어지는 날이자,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야. 네가 나간 후, 홀로 남은 숙소는 적막했어. 아직 아침이라 더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오더라. 그래서 나도 일찍 체크아웃을 했어. 그리고 에어비앤비에 캐리어를 맡겨둔 채 트램을 탔어. 어제 못 다 본 비투스 대성당에 가기 위해서. 대성당 말고도 가야 할 곳이 많아서 ‘원데이 트램 티켓’을 샀어! 아주 편하더라.
나름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줄이 너무 길더라. 대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30분 넘게 기다린 것 같아. 덥지 않아 다행이야. 비투스 대성당은 생각보다 더 거대하고 성스러웠어. 외부보다 내부가 더 멋있더라.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번에도 뭔가 더 알고 왔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 건축학과 학생이라지만, 딱히 뭘 모르겠더라. 그냥 ‘서양건축사’ 시간에 암기했던 ‘고딕 양식’을 확인하는 정도? 아, 저게 첨두아치구나. 아 저게 플라잉 버트레스구나. 아 저게 스테인드글라스구나.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댄싱빌딩’으로 향했어. ‘댄싱빌딩’도 1학년때 과제로 그렸던 건물이야. 이름에 걸맞게 건물이 춤추는 것처럼 요상하게 생겼어. ‘프랭크 게리’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건물인데, 그 사람이 설계한 건물들은 모두 저렇게 비정형으로 생겼지. 안에 들어가 보진 못하고 밖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떤 중국인 여자분이 사진 찍어달라고 하더라. 덕분에 나도 찍어달라고 했지. 그렇게 얼레벌레 프라하 건축기행은 오전 중으로 마무리되었어.
이제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야. 슈퍼 계획형인 나는 한국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버스를 미리 예매해 뒀지. 버스시간이 아직 남아서 숙소 근처 공원에 있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어. 맛있더라. 날씨도 좋고. 프라하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 너와 함께한 첫 유럽여행이 프라하라서 너무 좋았어. (러시아는 너무 많이 가봐서 프라하가 처음이라고 칠게!) 그리고 프라하 경력자인 네가 알아서 이곳저곳 데려다줘서 너무 고마웠어. 덕분에 내 유럽여행의 출발이 아주 산뜻하다!
트램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긴 했는데, 정류장이 너무 많아서 헷갈렸어. 이러다 버스를 놓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에 계속 돌아다니게 되더라. 다행히 친절한 한국 블로거가 프라하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방법을 자세하게 포스팅해 둬서 버스를 탈 수 있었어. 역시 도시 이동은 너무 어려워. 눈을 감았다 뜨면 도시가 바뀌어 있으면 좋겠어. 정말.
드레스덴에서는 숙소까지 가는 길도 힘들었어. 앞으로 다시는 에어비앤비 아파트는 안 잡으려고. 대단지라서 집 찾기가 어려웠거든. 독일아파트들은 대부분 대단지래. 아! 그거 알아? 우리나라 초기 아파트들은 거의 독일을 보고 배운 거 거야. 그 이후 몇십 년이 지난 우리나라는 여전히 상류층들도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대. 독일에서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거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더라. 그래서인지 내가 지낸 에어비앤비는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와 비슷한 느낌이었어. 신기해.
체크인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드레스덴 관광을 하러 시내로 갔어. 숙소에서 드레스덴은 좀 거리가 있어서 걷는데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거리가 예뻐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 드레스덴도 프라하처럼 깔끔하고 예뻤어. 프라하보다는 덜 동화 같지만. 구글지도에 표시된 관광지들 위주로 둘러봤지. 네가 꼭 가보라고 한 츠빙거 궁전이 가장 예쁘더라. 네가 보여준 사진에는 눈이 왔었는데, 오늘은 따뜻한 봄의 모습이었어.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서 사람들을 한참이나 구경했어. 노을 지는 광장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더라.
숙소 근처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시내에 있는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었어. 아직 식당에 혼자 들어갈 용기는 없더라고! 때마침 푸드코트에 학센이 있더라고. 독일에 왔으니 학센은 먹어봐야지! 근데 푸드코트라 그런지 맛없더라! 원래 학센 맛이 이런가? 아무튼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어. 시내에서 너무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더라.
버스에서 어떤 소녀와 자꾸 눈이 마주쳤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더라. 그러곤 나에게 독일말로 계속 말을 걸더라고! 나는 영어 밖에 못해서 의사소통은 어려웠지만, 소녀도 마트에 간다는 걸 알고 따라 내렸어. 마침 숙소에 가기 전에 물을 사가야 했거든. 초등학교 1~2학년 생으로 보였는데, 아주 야무지게 나를 마트 안까지 데려다줬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소녀의 따뜻한 눈빛과 친절함이 너무 기억에 남아. 아직 혼자여행에 적응하지 못해서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거든. 그래서 너와 있을 때보다 주위를 더 경계하는 것 같아. 피곤해. 오늘 소녀의 따뜻한 눈빛 덕에 앞으로 있을 혼자여행도 기대된다! 솜이 너도 곧 친구와 헤어져 혼자여행을 하게 될 텐데, 잘할 수 있지? 심심하면 전화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