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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작 Mar 12. 2024

희망퇴직을 받겠습니다. (1)

희망퇴직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김 과장님, 이야기 들었어요? 이번 희망퇴직 조건은 지난번 보다 안 좋고, 대상 연령도 낮아졌대요."


"안내 메일에는 45세 이상이 대상이었는데,  H팀 신입사원에게도 이번에 희망퇴직 제안이 들어갔대요."


"어떻게 해요. 이 부장님 상무님이 급히 찾으시더니 지금 상무님 방 들어갔는데, 1시간째 안 나오세요. 희망퇴직 이야기 중인가 본데요." 



벌써 세 번째 희망퇴직이다. 



첫 번째 희망퇴직 때는 설마 하겠어?라고 다들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조금 후에는 퇴직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 비교적 좋은 보상을 받고 씁쓸한 박수를 받고 퇴직하셨다. 나이 지긋하시거나 퇴사를 원래 생각하셨던 분들 위주로 정리가 되었고, 조금 뒤숭숭했지만 아직 과장인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아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 찝찝하게 들리는 소문. 

'희망퇴직을 통한 체질 개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번 희망퇴직 보상이 가장 좋을 것이고, 희망퇴직 할당량을 결국에는 채울 것이라는 것.'


첫 번째 희망퇴직으로 정년이 가까우신 부장님, 면팀장님들이 대거 퇴직하셨다. 집으로 돌아가신 분, 협력사에 한자리를 차지하신 분, 하고 싶으셨던 제2의 직업을 찾으신 분 등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로 일했지만, 회사를 나가는 순간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첫 번째 희망퇴직 이후 진행되던 과제들이 하나둘씩 홀딩되기 시작했다. 함께 협업하던 다른 팀 팀원 중 희망 퇴직자가 생기고, 인수인계자가 contact point로 지정되었다며 알림 메일이 날아왔다. 과제 진도도 쉽사리 나가기 어려웠다. 해서 뭐 하냐 라는 분위기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가온 두 번째 희망퇴직. 이번에는 나이제한이 40세로 내려왔다. 직급에는 제한이 없었다. 원하면 다음날 퇴사 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적막하기까지 한 사무실,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나 상무님 콜이 있을 때는 모두가 그 자리 쪽을 쳐다봤고, 상무님 방으로 들어간 뒤 나오는 구성원의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면담을 하고 난 뒤 며칠씩 연차를 쓰시는 분도 있었다. 신문기사에는 회사의 구조조정 소식과 함께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맹 비난이 쏟아졌다. 진짜 신입사원이 희망퇴직 했다. 본사는 지방 사업장 분위기를 묻고 지방 사업장은 본사의 분위기를 묻는 등 동기끼리 조심스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동기 중에도 희망 퇴직하는 케이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때마침 미리 이직 자리를 알아보고, 최종 합격을 한 뒤 연봉 협상을 기다리고 있는 동기가 있었다. 희망 퇴직금 20개월치를 받고, 이직까지 하게 되는 베스트 케이스였다. 그 동기에게 부러움과 고마움의 마음을 느끼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필수적인 과제와 투자 외에는 전면 중단하라는 경영층 메시지가 내려왔다. 진행되던 과제는 모두 스탑 되었다. 과제 중단 소식을 과제원끼리 전하며 아쉬움과 서로의 안부를 물었으며, 서로의 팀에 희망 대상자로 선정되신 분의 근황 소식도 공유했다. 


출근해서 필수적인 업무만 우선 수행하고, 자체적으로 비용 없이 할 수 있는 일만 목적성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집기, 인쇄용 종이, 종이컵, 커피, 차와 같은 탕비실 물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면지 사용을 권장했다. 


연봉은 올해도 동결, 성과급은 기대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출장자 처우가 축소 됐으며, 필수적인 업무 외에는 출장, 파견도 모두 정지 됐다.  


이제 같은 팀 내에서도 이직 소식을 전하며 조직을 떠나는 사람이 생겨났다. 축하를 하고, 어디로 가는지를 묻고, 그 회사 추가 채용 소식을 묻고, 서류/면접 진행 방식을 묻는다. 






처음 이 회사를 입사했을 때를 떠올린다. 공채 출신으로 입사한 나는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여기서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외부 교육이 있거나, 승진 기회가 있으면 우선 공채 출신부터 우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같은 능력치를 보유해도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이곳을 나갈 이유가 없었다. 더 발전하고자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일했다. 가만히 있으면 회사는 절대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세 번째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이번 희망퇴직 조건은 첫 번째 희망퇴직 조건의 반 정도로 축소 됐다. 설마가 사실이 됐다. 동기들, 건너 건너 알고 지내는 선후배들이 일주일에 한 명씩 퇴사 소식을 전했다. 이직을 하는 케이스, 희망퇴직을 하는 케이스 등 그리고 그룹사 고통 분담 차원에서 사내 구성원을 다른 계열사로 전출시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룹사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S급 인재 중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전출시키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제 정말 턱 끝까지 물이 찬 기분이다. 


하던 업무는 모두 스탑 되었고, 꾸역꾸역 그동안 바빠서 못했던 업무 관련 스터디를 하며 하루하루를 패배감에 가득 찬 사무실 속에서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 메신저가 울린다.


김 과장님, 잠시 A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해요. 


팀장님의 면담 호출. 불안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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