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결혼한 남자는 좋은 남편감이 아니었다. 엄마 앞으로 괜찮은 맞선 자리가 줄을 섰지만, 정작 엄마가 선택한 남자는 가난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가난한 교회전도사였다. 엄마를 친혈육처럼 아끼던 큰 이모부(엄마의 형부)는 그 남자와 결혼하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노라고 길길이 날뛰셨고, 결혼식 당일에 신부 대기실에 찾아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지금이라도 도망가라고 하셨단다. 조실부모하고 빈털터리로 강원도 오지에서 서울로 상경해 여동생과 살고 있던 볼품없는 남자에게 시집가려는 엄마를 집안에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충청도 시골에 유지라고 해도 될 만큼 여유 있는 농군 집안의 둘째였다. 시골 할아버지가 일머리가 좋은 엄마를 붙들어 농사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자, 서울로 도망쳐 야무지게 살고 있던 중이었다. 꿈이 있고, 패기가 있던 엄마가 돌연 어디서 허접한 남자를 데려와 무조건 결혼하겠다고 우기니 친정 식구들은 다 낙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 남자와 결혼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가 키는 작았지만 인물이 좋고 똑똑한 사람이기는 했다. 말을 잘해서 인기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평생 엄마를 괴롭게 하는 쓸데없는 조건이 되고 말았다.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났고, 엄마는 잘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남편의 자리도, 아버지의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20대 중반의 젊은 부부니까 성실하게 일하면 아이를 키우면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기 자신이 대단해지기를 원했다. 엄마에게 돈을 해 오라고 닦달하고, 교회 전도사 생활도 그만두고, 정치를 하겠다, 사업을 하겠다,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정작 그 돈을 펑펑 쓰면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빚쟁이들만 늘어가고 남자는 그들을 피해 늘 밖으로 돌았다.
엄마는 여자로서도, 아내로서도 행복할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남자를 평생 기다려주었다. 1,2년에 한 번 집에 와도 여전히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대우해 주었다.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따져 묻지 않았다. 남편에게 돈을 받지 못한 빚쟁이들이 쳐들어와 심장이 뛰는 날이 숱하게 많았지만 엄마는 묵묵히 견뎠다. 자식들을 위해서 이혼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변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원수 같은 남자를 위해 기도했고, 자식들에게도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 소망은 엄마가 숨을 거두기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엄마의 남편, 그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이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온전히 대하기 어려웠다. 나의 어머니를 괴롭히는 남자, 무책임한 남자, 혼자만의 생존이 중요한 남자, 여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남자, 그러고도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는 남자.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나에게 다정했는지, 나를 자식으로서 좋아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때리거나 학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쩌다 집에 오는 날이면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족보를 일러 주거나, 천자문을 읽게 하거나, 신문에 나온 여성 문교부장관 사진을 오려 큰 꿈을 가지라고 당부했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헷갈렸다. 사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엄마를 괴롭히는 걸 보면 분명 나쁜 사람인데, 자식들에게는 엄마에게 하듯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일체 생활비도 안 주고 처자식 생활에 대해 무관심 한 걸 보면 미워해야 하는 게 마땅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자식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아빠를 사랑했다.
처자식을 나 몰라라 하는 나쁜 아빠를 마구 원망하고 비난하고 싶은데, 사실은 나도 아빠가 제발 아빠의 역할을 해주기를 늘 바라고 있었다. 평생 헌신하는 아내와 모든 수난을 겪고도 아빠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은 자식들을 향해 아빠가 기적처럼 변해서 돌아오기를 바랐었다. 그러면 지난날은 다 괜찮을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그런 내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아빠가 나타나면 더 큰 소리를 치고 아빠에게 마구 퍼부었는데, 후에 엄마 일기장에 적힌 글을 보고 한참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 딸의 짝사랑이 너무 가엾다.]
엄마,
엄마는 왜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야?
나조차 눈치채지 못한 내 마음을
엄마는 어떻게 다 안 거야?
엄마가 여자로서 행복하지 못했어도
엄마라서 행복했다고 그랬었지.
사실 나는 그 말도 안 믿었었어.
차라리 우리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정말 멋지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일을 해도 성공했을 사람인데,
너무 아까운 사람인데 싶었거든.
그런데
내 품에 두 아이를 안아 보니까
엄마의 그 말을 정말 믿을 수 있게 됐어.
혼자였다면 감당하지 못할 일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살아낼 수 있더라고.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지켜줘.
엄마,
당신의 남편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딸이자 한 여자로서 나는 말할 수 있어.
당신은 정말 멋진 여자, 멋진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