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금방 지나간다. 그때가 좋을 때야.
어린 두 아이랑 씨름하느라 몸에서 소금기가 진동을 하는데,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꼭 저 말씀을 하신다. 한 놈은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사방으로 던져대고, 한 놈은 빨리 가자고 앙앙 우는데, 이게 좋은 시절이라고?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오늘 찍은 아이들 사진을 찬찬히 다시 보며 히죽거린다. 이렇게 이쁜 애들에게 윽박지르고 눈을 부라린 게 후회되는 순간이다. 내일은 오은영 박사님 말씀처럼 노련한 엄마 노릇을 해보리라 다짐하지만, 평생 반복되는 헛된 다이어트 결심처럼 무너질 것을 안다.
언젠가 두 녀석이 커서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냐며 대어 들고, 엄마의 사랑이 턱없이 모자랐다며 쓴소리를 할 때, 나는 보란 듯이 이 매거진을 들이댈 작정이다. 이 기록이 나 자신은 부족한 인간일 망정, 내 사랑은 부족함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기를 바라 본다.
오늘 내 딸은 7시 20분에 일어나서 초등 3학년 교과서 문제집을 풀고 일찍 일어나기로 약속한 엄마가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씩씩거리며 아침을 시작했다. 공부를 좋아하냐고? 매일 문제집 풀면 토요일에 동생 몰래 핸드폰 게임 20분을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그랬더니 피곤한 밤보다 아침이 낫다며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문제집을 푼다. 그런데 전 날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잔 엄마는 채점을 약속해 놓고도 이불을 휘감고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이로 살아서 좋은 점은 아침의 불쾌함을 오후에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며 "토실이 왔어?" 하는 엄마를 향해 씨익 웃는다. 오늘은 동생이 오기 전에 딸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먹고 싶은 걸 물으니 단번에 "햄버거!"라고 외친다. 외식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어린이날에나 사주겠다던 햄버거였지만 21세기에 맞는(?) 결정이 아니긴 했다. 쿨하게 오케이를 외치고 롯데리아를 향했다.
딸은 옛날의 내가 그랬듯이 동생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동생 빼고 딸과 비밀 데이트를 하며 뇌물도 바친다. 엄마의 조건은 단 하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지만,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반복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게 신의 뜻인가 보다.
만족스러운 오후를 보낸 딸은 신이 나서 피아노 학원에 갔다. 그다음은 아들 차례이다. 어린이 축구공을 주섬주섬 챙겨서 돌봄 교실로 데리러 간다. 다행히 마지막 아이는 아니었다. 매일 보는 엄마인데도 뭐 그리 반갑게 맞아 주는지, 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온다. 평생 샌님으로 살아온 44살의 엄마는 분홍 리본 집게핀으로 머리를 묶어 올리고, 족저근막염의 통증을 꽉 묶어 둔 채 8살 아들과 공을 찬다. 막상 시작하면 안 봐주고 한 골도 안 내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유산소 운동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비는 중년 엄마의 사랑을 아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