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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25. 2024

오른손이 한 일을, 왜?

MZ세대의 '3요'에 대한 단상

밀레니엄! 그 해 2000년도에 발령받았던 나를 가끔 떠올려 본다. 내가 ‘선생님’으로 불리는 일은 참으로 두렵고도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 소중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나는 ‘열심히 배우자’는 전략을 세웠던 것 같다. 가르치는 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새로운 수업 기법과 교육 이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먼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운전을 좋아해서 멀리까지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녀오는 일이 크게 고단하지 않아 다행인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열심히 배우는 것과 잘 가르치는 일이 비례하지는 않은 것 같아 항상 아쉽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어느 시기부터는 멀리까지 어떤 연수를 받으러 가거나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일은 비공식이 되었다. 출장이나 연수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찾아다녔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과정을 거쳤다면 잘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자꾸만 위축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아주 초반의 하브루타 토론교육에 대한 연수를 받으러 다닐 때도 몰래 다니곤 했다. 프레O 프로그램으로 자료를 제시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난 후 마음을 빼앗겼을 때도 비슷했다. 너무나 혁신적이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내 수업에서도 활용하고 싶어 조급할 때가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저기 새로운 교육에 대해 기웃거렸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배운 기법과 내용을 잊을세라 수업에 담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복무와 마찬가지로 공개수업 등으로 드러나지 않게 했다.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여 누가 알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우수사례의 계획서나 보고서 등으로 남기지도 않고 더 깊이 연구하지도 못했다. 오로지 우리 반 아이들과의 수업에서만 표현되었다.

비공식적이고 비밀스러운 나의 일탈이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수시로 성과나 승진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유와 도착하는 길은 몰랐지만 그저 열심히 배우는 희열만은 있었던 시기였다. 열심히 쫓아다니며 배우게 한 나의 '왜?'는 즐거움과 희열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를 가리켜 MZ세대라고들 한다. 밀레니엄 전후에 태어난 세대이니 내 아들딸 뻘이다.  젊은이들에게는 3가지 “요?”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제가요?”

“이걸요?”

“왜요?”

이 화법의 속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세 가지 '요'는 나를 이끌어가는 이유 바꾸어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떠한 일에 대해 ‘하겠다’와 그 반대편의 ‘할 수 없다’ 혹은 '하지 않겠다.'로 갈라지게 하는 질문 중 세 가지인 것이다.



먼저 '제가요?'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일이라면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나? 내가 하는 것이 맞는 상황인가? 에 대한 반문이다.

다음으로 '이걸요?'는 시간이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이 적절한가? 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젊은 감성과 판단력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이렇게 묻게 되리라. 그래서, 지금? 이 많은 것을? 복잡하거나 너무 단순한 노동을? 이 포함된 것이다.

마지막 '왜요?'에 와서는 가장 근본적이고 진지한 물음이 된다.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하는가? 당위성을 묻는 이들과 건너에서 이 말을 듣는 이는 확연히 다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요ㅡ"암요, 그럼요, 별말씀을요."로 일해 온 기성세대에게는 반항의 어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3요 화법 중 특히 내 마음이 멈춘 지점은 바로 “왜요?”였다.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이유’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일로 자신을 이끌거나 집중하게 하는 이유가 있는가? 에 대한 답이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단, 안전을 보장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결정이라는 전제에서 지지의 손도 들어줄 수 있다.



요즘 자꾸 스스로 “왜?” 하고 묻고 해답도 찾게 된다. 예전의 내가 만약 보고서나 프로젝트, 연구학교나 다른 도전의 이유를 더 빠르고 강하게 느꼈다면 실행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던 거다. ‘왜?’에 대한 답을 몰랐기 때문에 더 큰 힘으로 나 자신을 이끌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의 나를 살아가게 했던 이유들은 지금 내 삶의 다른 방향에서 여러 가지 향기를 뿜어내 주고 있으므로 후회는 없다. 어딘가에 잃어버리지도 사라져 버리지도 않고 지금 내 곁에 있으므로 감사하다. 그리고 그저 말해주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답을 몰라 답답했던 또 다른 선생님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교사로서의 모든 행위는 의미 있는 일이었어. 그러니 당당해져.” “왜? 에 대한 답에 확신이 있다면 그 길을 가.” 직접 이야기 나누어 보지 않은 후배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MZ세대인 내 아들, 딸에게도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왜?’에 대한 답이 명확해지기를, 그리고 답을 얻었다면 당당히 그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목소리 높여 강조하지 않아도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 모두가 각자의 도전과 배움 앞에 그리고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안다. 요즘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 수집과 공유가 가능해져서 이런 오지랖은 사실 필요도 없다. 후배 선생님들이 참 야무지고 똘똘해서 깜짝 놀라거나 오히려 부끄러울 때도 많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실천하고 연대하고 토론하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혹 단 한 명이라도 교사의 배움에 대해, 성장에 대해, 상처와 회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널리 알리라.” 더 지혜로운 성자와 인생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감히 결론 내려 보았다.

어떤 이유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원인이 같은 사람들끼리, 선생님들이라면 동료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하라.’고 꼭 당부하게 된다.

“왜요?”라고 묻는다면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니까, 때로 가족이라도 직업이 다르다면 직장문화나 힘든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 이야기들을 풀어내려면 학교라는 곳을 잘 아는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일을 겪은 이후라서.



* <선생님은 딴 생각ing> 브런치 북 다음 연재 글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에 그 일에 대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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