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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Feb 28. 2024

디지털기반교육은 이런 게 아니잖아

휴대폰 멈춰!

“에이~프리미엄으로 깔아야죠!”

O튜브!라는 뜨거운 감자를 수업에 활용하고 말았을 때 우리 반 학생이 했던 말이다. 말을 했다기보다 자동으로 튀어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3월 어느 날 1학년 교실에서 있던 일이다. 수업 자료로 쓰던 3분 몇 초 정도 되는 영상의 재생을 눌렀는데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 반 학생이 그렇게 말했었다. 광고가 먼저 뜨자 여덟 살 남자아이에게서 나온 말이다. 그 학생이 한마디 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주로 그 내용은 나에게 O튜브를 이용하는데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하라는 것이었다.

“별로 안 비싸요. 그냥 결제해요”

“우리 엄마가 정말 편하대요.”

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 말을 듣고 고민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자료를 제시할 때 빼놓을 수 없게 연계하여 보여주게 되는 콘텐츠들이 있다. 몇몇 사이트들은 단골처럼 드나들게 된다. 수많은 주제와 영상들이 방법과 시간을 달리하며 손짓하고 있다는 핑계로 어김없이 드나들며 수업 자료로 초대하게 된다. 사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습 상황에 시범을 보이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실물 화상기로 화면을 제시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 이유로 종이 접기의 각 단계나 신체활동, 놀이 학습의 방법을 미리 안내할 때 나는 O튜브에 올려진 영상을 활용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아이들이 몇 초의 광고를 참지 못하고 졸라대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문제의 발언 이후 달라지고 있는 점이 또 있다. 최근에는 그나마 O튜브 영상도 기다며 더 짧은 쇼츠영상을 즐기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방과 후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목록에서 이걸 고르라, 저걸 보자며 실랑이를 벌일 때 보니 모두 쇼츠 영상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양상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멈춤’의 방법을 사용했다. 전체 영상을 한 번에 모두 시청한 후 질문하는 방식이 아니라 짧게 끊어서 본 후 질문이나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이어서 보고 싶다며 소리치는 아이도 있었다. 의도적으로 영상 뒷부분을 안 보여준 상태로 학습으로 이어지면

“나머지 뒷부분은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 달라고 해야겠다.”

여간해서는 당해 낼 수도, 맞춰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견디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영상 중간에 질문을 한다. 학습 요소와 관련하여 묻고 영상에서 답을 찾게 해 준다. 곧잘 발표도 잘하는 아이들을 보며 여전히 씁쓸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어떻게 실천할지 동료 선생님들과 자주 고민하는 꼭지이다.          

디지털기반 교육은 어렵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보면 대응하고 교육을 통해 주도적으로 디지털기기와 프로그램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주도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방식이나 수단이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내가 교실에서 도입한 자료가, 지도하는 방식이 디지털기반 사회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고개 숙여진다. 작게는 코딩에서부터 AI학습 프로그램으로 복습이나 평가를 대신해 보고도 탐탁지 않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고 집중력은 높아지지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학생들은 점차 하이패스처럼 영상이 자신의 감각세포들을 통과하는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그것의 방향이 배움이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

교사 연수에서도 디지털기반교육은 마찬가지로 뜨거운 감자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거나 교실에서 활용하기 좋은 교구가 나오면 전달 연수, 활용 방법 연수 등을 통해 학생보다 먼저 배운다. 모둠용일 때, 짝 활동용일 때, 개인용일 때 각 활용 방법과 피드백 방법을 다양하게 교육받는다. 그렇게 연수를 받으면서도 자꾸만, 이걸로 디지털 역량이 길러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학생들이 이 수단에만 빠지는 게 아닐까 우려가 된다.   


        

몇 해 전 AI활용 수학학습 프로그램을 지도하던 때였다. 일정 단계 학습을 완료할 때마다 동물 캐릭터의 배지를 나누어 주는 보상이 있었다. 교사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배지가 의외로 폭발적 인기를 끌며 학생들의 학습 열기는 높아졌다. 기간 내에 달성해야 하는 학습양도 잘 채워나갔다. 누가 더 많은 동물의 배지를 받아 가방에 달고 다니는지 시합한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형국이었다.

그 해 우리 반에는 다섯 개 이내의 물건을 셀 때도 자꾸만 손가락을 펼쳐서 세어가던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학습 진도가 가장 빨랐다. 평가 페이지가 있었는데 하지 않아도 되는 페이지까지 모조리 해치웠다. 물론 점수도 좋았다. 대단한 기관에서 연구해서 내놓은 프로그램이라 믿고 진행하면 그만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학생에게는 맞지 않는 학습이었다. 아니 더 많은 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동안 길러지는 것이 학생들의 수학 학습력인지 의문이 들었다. 객관식 문제에 보기가 넷 있었는데 몇 번을 틀려도 답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세 번 틀려도 네 번째는 정답을 맞힐 수 있다는 뜻이므로 점수는 마음만 먹으면 늘 100점이었다.

물건 서너 개를 손가락 세어가던 학생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단원에서 100점을 맞았다. 모든 동물 배지를 다 획득하고 박수도 받았다. 박수를 받은 학생이 수학 학습에 재미를 붙인다면 성공한 것일 텐데 결과는 어땠을까?

배지 미션이 끝나자마자 거의 모든 학생은 수학 학습에 관심이 없었다. AI프로그램 실행을 위해 학생별로 배부되던 태블릿 PC도 수거하여 학급별로 돌아가거나 모둠별로 나누어 사용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더 힘들어졌다. 학생들은 태블릿 PC가 없는 수업에서 더욱 무기력했고 학습의욕은 바닥을 보였다. 실천연구 보고서를 쓰지 않으며 진행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준 프로그램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디지털교육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체감하겠는데 즐길 도리가 없다. 교사도 학생도 즐기면서 물 흐르듯 이루어지는 디지털교육의 이상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더 필요한가?

나는 너무 까마득해서 그만 멈추고 있다. 촌스럽게 종이책으로, 직접 손으로 해보는 보드게임으로, 바둑알로, 과자를 세며 대체하고 있다. 어느 한쪽, 어떤 방향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털기반교육이 어려운 길을 가고 있음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디지털세대가 아니라는 이유뿐만은 아닌 것 같다.      



*바야흐로 글쓰기를 즐기고 고치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따라서 학기 중 연재 주기를 주 1회로 변경하고자 합니다. 제 글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도록 생각의 힘도 많이 기르는 보충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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