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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r 13. 2024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병 주고 약 주고

그 일은 곱씹기도 싫다. 살면서 가장 커다랗고 깊은 허탈, 무슨 낱말로 써야 그 마음을 담을 수 있는지 아직 찾지 못한 정도의 일을 최근에 겪었다.



적어도 소신을 가지고 애정을 쏟아오던 교직 생활을 믿고 지지해 줄 거라 생각하던 이들, 그리고 장소가 있다. 그런 존재가 도리어 나를 향해 불신의 눈길을 준 일로 크게 무너져 내렸다. 나의 권리를 송두리째 앗아간 독단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해와 눈총의 파괴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거대했다. 숭고 직업의식이나 거창한 교육관이 나에게 있는지조차 잊고 살아왔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알량하게나마 갖고 있던 소박한 내 꿈이 무참히 짓밟혔음을. 그 일이 지진으로 작용하여 울고 웃던 나의 터전은 이제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는 것을.



 못 이루던 밤마다, 피 흘리는 꿈으로 잠을 깬 밤마다 생각했다. 수십 년 다져온 내 소명의식과 존재, 그리고 가치가 이렇게 가볍고 하찮은 취급을 받아도 되는가? 내가 만약 다른 이름의 자격이나 더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렇게 폐허가 되었는데 정작 진앙지는 멀쩡하겠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물음들은 몽둥이가 되어 나를 끊임없이 때려댔다. 여러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없는데도 자꾸만 온몸 여기저기 통증이 찾아왔다. 바닥이 까맣도록 머리카락이 빠지고 항상 코피가 묻어났다. 며칠 동안은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이루다가 또 며칠은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잠이 쏟아지기도 했다. 아무 때나, 어떤 곳에서나 눈물이 쏟아지고 목소리마저 바뀌어버리는 등 나의 조절 호르몬의 체계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아직도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자꾸만 묻고 있다.

“왜요?”

“내가 왜?”

“나한테 왜?”

나는, 나는 무엇이었나? 나는 이 폭력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답을 찾고 있다. 미련하고 더디게.



그러다 아주 아주 작은 것이 보였다. 감사와 행복의 마음은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각각의 모양과 향기로 온다는 것. 가족이 주는 감사와 행복, 친구가 주는 즐거움, 성취에서 오는 희열은 다르다. 많은 순간 보람을 느끼고 마음이 부풀어 오르지만 내 답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이들에게서 찾기로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나의 경우는 가장 '여러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교실이고 학교다.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나에게 달려와 폭 안기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며 나에게 괜찮은지 묻는 ‘어른’이 가장 '여럿'이 모여있는 곳 역시 학교였다.

내가 가장 크게 휘청이던 때 수없이 외쳐대던 질문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묻고 있다.

“왜요?”

“왜 학교예요?”

참 미묘한 일이다. 가장 괜찮지 않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 또한 그곳에 있었다. 힘이 풀려버린 나를, 할 말을 잃은 나를 부축해 주고 다독여주던 분들이 기억났다. 걱정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그곳, 학교에서 들렸다. 나를 기다리며 사랑의 쪽지를 쓰고, 동영상을 보내오는 착한 손도 거기에 있었다.

나를 흔들어대는 이유는 알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았지만 쪽지와 동영상을 보며 눈물이 나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안에 모든 수분이 모조리 땅속까지 스며들어 버리는 듯한 허망했던 그 순간이 다시금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아주 조금씩 회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나를 위한 어깨와 손들의 기억을 꺼내어 약을 먹듯 꿀꺽 삼켜내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지난 연재 <오른손이 한 일을, 왜?>에 이어 올렸어야 하는 글인데 누락되어 이제 올립니다. 

* 이 지진의 복구까지 옆에서 힘이 되어준 위대한 가족들, 김자매님들, 동료 선생님들, 함께 배운 언니들과 친구의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 더 깊이 새기며 여기에는 기록하지 않았음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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