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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r 20. 2024

퇴직 후 60년은 뭐 하실 거예요?

진로진학 교육은 내 인생부터

대학원 첫 수업을 앞두고 어색하게 몇 명이 모여있던 강의실에서 누군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다른 전공과목도 많은데 진로진학 분야를 선택한 이유가 뭐였는지 각각 이유를 좀 들어봅시다.”

이 질문은 담당 교수나 강사가 한 말이 아니었다. 같은 학번인 언니가 한 말이었다. 노련한 사교육업체 운영자였는데 나중에 공부하면서 보니 그녀는 그런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던 대답은 이러했다.

“저에게 진로와 진학이라는 화두를 던져 준 사람이 둘 있는데 뜻밖에도 제 아들, 딸은 아닙니다. 둘 중 하나는 어떤 연수의 강사님이고, 다른 하나는 전에 제가 가르치고 졸업시켰던 6학년 여학생입니다. 강사님은 제 진로를 생각하게 해 주었고 그 제자는 학생의 진로진학 방법을 공부하게 해 준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진로진학 분야를 선택한 다른 이들의 대답이 거의 비슷할 거라 짐작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주도적인 그녀의 질문에 당황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각각의 다른 이유를 야무지게들 대답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당시 직업이었다.

대학에서 취업 상담을 해주는 이, 입학사정관으로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는 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이, 입시컨설팅 업체에서 강의와 컨설팅하는 이, 사교육 업체를 운영하며 강사발굴 및 영업, 홍보를 하는 이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들은 대학원을 통해 각종 검사 분석 프로그램 참여경력을 높여 이직하거나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보수협상에 활용하고자 했다. 특히 사교육업체와 입시 컨설팅 일을 하는 이는 대학원 선택에 대해 매우 격앙된 상태로까지 보였다. 몇 명의 교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일반 직업군이 했던 대답에서처럼 강력하고 절실하며 자신의 진로에 더 밀접한 관계를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자기 계발을 위한 방향이었고 학위를 통해 어떠한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는 더 거슬러 올라가 어떤 연수가 기억났다.    



 “앞으로의 세상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운 나쁘면 120살까지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연수를 받으러 오신 선생님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퇴직이 10년 이상 남은 분들로 보입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퇴직 후 60년 정도를 어떻게 사실 계획이십니까?”

10년쯤 전에 집합 연수를 받으러 갔다가 강사님께 들은 첫마디였다. 내가 기억하는 집합연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적인 발문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 질문을 듣고는 연수실은 상당히 술렁였다. 첫 번째 마이크를 받게 된 선생님도 역시 당황한 듯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했다.

“다른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선생님은 노후 계획이나 앞으로 하실 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전히 선생님들은 서로 난감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어수선했다. 그 시간의 주제는 진로진학에 관한 연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상치 못했기에 충격적인 질문과 더 충격적일 만큼 당혹스러워하는 선생님들의 반응에 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로, 진학’이라는 용어는 학생들에게만 적용하는 교육의 분야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관심을 갖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해보니 무궁무진하며 재미난 분야였다. 앞서 대학원 첫 수업 때 진행을 자처한 언니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성향과 재능 등을 검사해 보는 것이 진로진학의 첫걸음이었다. 



이 시기에 활용했던 다양한 카드와 검사지, 보드게임 등은 그때마다 우리 반의 학급운영 물품이 되어 교실로 들어왔다. 여러 장의 사람 모양 종이에 자기 모습, 취향을 넣어 그려 넣었다. 자신은 한 명이지만 자기가 가진 다양함을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자아탐색의 시작이며 초등 저학년 학생에게 더 유용했던 활동이다. 자아를 탐색한 후에는 서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 꾸미면서 소통과 협력으로 연결되는 인성교육까지 가능하다. 추석학습에서 강강술래를 배운 후 교실을 꾸며도 좋았다. 여러 직업카드도 수업시간에 활용하기 좋다. 동화책을 보든, 동영상 자료를 보든, 일상생활에서 찾든 우리 주변의 직업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찾아보며 직업카드를 연계한다. 때로는 주고받기 놀이를 하며 설명하고, 때로는 직업 많이 찾기 시합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자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직업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지 배우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자아탐색 수업은 장점 50가지 쓰기였다. 글씨를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학년에 적용할 수 있다. 글씨를 많이 쓸 수는 있지만 쓰는 활동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이 활동이 주어진다는 것은 고통이었나 보다.

“50개를 언제 다 써요?”

“팔 아플 것 같아요. 줄여주세요.”

“저는 잘하는 게 5가지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50가지를 써요?”

여기저기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그래도 작은 장점부터 예를 들어가며 적어보라고 한다. 이 단계를 두어 번 거치면 이내 조용하게 집중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선생님, 50개 넘어도 괜찮아요?”

“이상해요. 50개를 썼는데 쓸 것이 또 생각나요.”

그렇다. 아이들은 장점이라는 말 자체를 너무 커다랗게 생각하거나 자신과는 동떨어져서 생각하고 있다가 발견하게 된다. 그 활동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도 존중하게 된다. 참 간단하면서 효과가 좋은 진로진학 학습이다. 10년 전후로 살아본 학생들의 장점도 50가지가 넘는다. 그러면 더 오랜 경험과 지혜를 쌓아온 어른들의 장점은 더 많을 것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 그러나 어른들은 이런 활동이나 사고를 해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한 유명 강사가 말하기를

“어떤 모임이든 예순 살쯤 되어서 나가면 서로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좋은 말을 하다가 헤어지는데, 마흔 즈음에 모임에 다녀올 때는 서로 상처를 주고, 혼자서도 상처를 받으며 헤어진다.”

이유는 이랬다. 40전후에는 자신의 커리어나 자녀의 대학이나 취업, 배우자의 승진 등 다양한 자랑거리로 서로 위축감을 주거나 스스로 작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면 60대가 되면 그동안 빛나던 것들이 꺾이거나 병들어서, 혹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되어 서로 모두 비슷한 상황이 된다고. 그래서 그 과정을 모두 경험해 본 동질감으로 서로 다독이며 덕담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라고! 

의료기술 발달로 우리가 120살까지 살게 되든, 환경오염으로 지구와 함께 우리가 아프고 병들게 되든 우리의 인생에는 크고 작은 굴곡과 방향 전환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을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인생에서 크게 유턴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장점도 잘 키워나가고 단점도 잘 보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이다. 부디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보자. 이것이 120살까지, 퇴직 후 60년도 잘 살 수 있는 마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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