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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r 27. 2024

배워서 남 주려고

대학원과 *드

중년이 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도서관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어린이집이나 아동병원으로, 마트로 퇴근하는 시기를 보냈다. 돌아보면 행복했으나 당시에는 힘들기도 했던 시절이다. 직장도 다니고 출근 전, 퇴근 후 육아까지 해내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도서관으로의 퇴근은 아이들을 빨리 키워내고 홀가분한 상태라서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특별히 대단한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시사문제, 사회의 다양한 사건을 검색하기도 하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물론 아주 좋아하는 지정 자리가 있기는 하다. 둥근 창으로 하늘이 보이는 곳이라서 그저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는 나도 공부나 도서관을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결코. 그런데 이 나이에 새삼 도서관을 찾게 된 최초의 계기는 진로진학 분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부모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어려운 학생의 진학을 위해 여러 기관에 대해 정보를 알아보게 되면서부터다. '진로진학=대학입시'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고 내 사고도 거기에 한정되어 있을 때였는데 대학 이전부터 학생의 상황에 맞게 가야 할 길은 참으로 여러 갈래였다.

도움에 감사한다는 그 학생의 인사를 받은 후 진로진학에 대한 관심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드나들게 되었고 어떤 역할인가를 수행하고 싶어졌다. 초등학교에도 진로상담 교사를 양성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그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하던 일이라 그런 제도만 생긴다면 진로상담교사의 역할을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대학원 진학이 필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집 공고만 몇 해 봐 오던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나니 기대가 더 컸다.           

여러 검사방법도 익히고 이론도 알게 되었고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적용도 해보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로상담교사 제도에 대해 교육부와 관련기관까지 모두 전화하고 상담, 문의를 해보았지만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다. 대학원의 교육과정과 나의 학습의욕도 딱 그 지점에 머물고 말았다. 대학원 학생들조차 그 분야의 진로에 대해 막막해져 버렸다. 사교육계의 동기들은 상황이 어찌 변하든 여러 면에서 참 치열하다는 생각도 들 때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있었다.

"자기 자녀의 진로, 진학은 역시 부모가 꿰뚫고 준비해야 해."

"입시 컨설팅을 맡기게 되더라도 부모가 숲과 나무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해. 아무리 좋은 컨설팅이라도 자식 일에 나서는 것만큼 남이 해주기는 힘들어"

정도라니! 어이가 없고 힘도 조금 빠졌다. 내가 수년간 꿈꾸던 세계와 영역에 대한 목마름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각 직업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이쯤 해두고 나는 개인 자료를 모아두기 위해 *드를 만들었다. 당시 첫째 아이가 고등학생 때라서 주로 입시와 관련된 자료였다. 더 자세히 말하면 나의 건망증과 인쇄의 문제 때문에 만들게 되었다. 한번 본 정보를 다음에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출력해서 갖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화에서 진로진학 소재가 나오면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나는 버릇도 생겼다. 그렇게 소소한 정보 교류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들 중 중,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았는데 초반 구성원이 되었다. 그들은 초반부터 대학 입시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한 아쉬움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진로의 시작은 역량과 관심 분야를 파악하는 것부터였다. 각 자녀의 특성이 다르니 정보도 여러 방향으로 뻗어갔다. 동료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원들은 가지를 치게 되기도 했다. 나는 익숙한 자료인데 처음 보는 자료라는 반응에 의욕이 샘솟았던 때다. 도움이 될 사이트나 블로그, 기관을 알려주고 필요하면 가입해서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구성원들 자녀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드의 게시글은 부탁받은 분야의 정보가 집중되어 올라가기도 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냈다. 이제는 *드 멤버들 중 막내 그룹에 속하는 딸과 아이들이 2024.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2025. 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진정한 막내는 고입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다. *드에 올라가는 정보도 점차 줄어들고 고입에 대한 정보는 별도로 찾아 교류하고 있다.



내가 만든 *드에서 내가 스스로 나태해지고 있다. 다시 열심히 달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 *드를 통해 정보를 나누던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으로의 삶을 잘 준비하기 위한 취업을 향할 것이다. 자녀를 위해 소통하던 부모들은 건강한 노후를 잘 보내기 위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목표가 달라졌으니 새로운 정보를 끌어 모아서 다시 생애 주기에 맞는 정보의 강을 건너야 할 때이다. 120살까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진로를 위해, 혹은 진학을 위해! 앞으로 함께 나이들 지인들과 함께 튼튼한 다리가 되고 싶다. 성격을 수정보완하여 ‘진로진학취업노후 *드’를 공동운영하여 인생의 바다에서 멋진 항해를 해 나가야겠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데 이름이 요란해지고 있어 걱정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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