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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Apr 12. 2024

덕후, 아니고 마니아 자매

미디어소양이 걱정되나요?

나의 즐거운 독서, 자발적인 독서가 시작된 초등학교 시절. 아직도 그 시기를 생각하면 어둑해져 가는 오후 시간의 작은 방이 떠오른다. 그 방 안에는 책을 읽는 나와 동생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넘어져 본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을 짐작할 수도 있으리라. 마치 꿈속처럼 한 장면을 ‘시청’이나 ‘관람’하듯이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이 주인공인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경험 같은 거 말이다. 그럴 때는 보통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도 같다. 흡사 슬로비디오처럼 의도적으로 시각(時角)의 변화를 줌으로써 시각(視覺)에 영향을 주는 효과마저 준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보다 과장되면서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어릴 적 나와 동생은 거의 매일 온 방을 어지럽혔던 것 같다. 수십 권으로 이루어진 전집의 책 중에 또 십 수권을 모조리 꺼내었고 그것들이 펼쳐지거나 뒤집어 덮어져서 방안을 어수선하게 했다. 나는 책들 사이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었다가 자세를 바꾸어 벽에 기대어 앉아 무릎 앞에 책을 놓고 앉은 채로 납작 엎드려 읽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머리맡에 수십 권의 책이 널브러진 채 베개에 이마를 박고 엎드린 채 잠이 든 날도 있었고

“책을 정리하고 제대로 씻고 자라”

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와 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어질러놓은 그 방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때가 40여 년 전 나의 독서 입문기였던 초등학교 시절이다. 도서관이 아닌 우리 집에서 하던 독서 중에 내가 빠져 읽었던 전집은 두 가지였다. 동물도감도 있고 다른 책들도 많았는데 아무튼 유독 책이 닳도록 읽었던 책들은 두 종류였다. 앞서 말한 식물도감이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호순이’가 주인공인 만화 시리즈가 그것이다. 세계 각지의 사건과 장소를 연계하여 이야기를 꾸며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리스본이나 안나푸르나의 지명과 자연은 그 시절부터 나의 추억과 동시에 상식이 되었다.

내가 4~5학년으로 올라갈 때까지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두 전집류를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이랬던 것 같다. 내가 책 읽기에 빠져 동생과 놀아주지 않자 나중에는 동생까지도 함께 읽게 되었다. 동생은 만화 그림이 인상적이었는지 호돌이 호순이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이었는지 아무튼 내가 만화 시리즈를 읽을 때 항상 내 옆에 붙어서 함께 읽고 질문했다. 나이차 많은 동생이 착 달라붙어 질문을 하고 다시 읽자고 하니 나 또한 다시 책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자꾸 읽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두 해 정도 (오래전 기억이라 기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혹은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분명 다른 즐거운 일도 많고 새로운 책이나 놀잇감도 있었을 터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동생과 읽었던 책과 방이 떠 오를 걸 보면 그 시간은 항상 재미있고 신이 나서 반복 또 반복하는 독서를 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너무나 재미나게 읽으니까 아마 동생도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바짝 붙어서 어깨너머로 들여다보곤 했던 것 같다. 마치 이런 경우와 빗댈 만하다. 지금은 지하철에서도 주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옛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장면이 나올 때면 자주 연출되던 모습이 있다. 좌석에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있는 사람이 비치면 대개 그 옆자리나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꾸 그 신문, 잡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슬쩍 들여다 훔쳐보는 장면들. 나는 그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동생의 독서와도 맥을 함께 하는 지점이 있다.



미디어소양교육에서 ‘너무나 재미있어 보인다’, ‘호기심이 생긴다'는 중요한 단계이고 교육적으로 주목할 지점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다른 매체나 현상이 너무나 ‘재미있어 보이고’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이 ‘궁금하고’ 참을 수 없는 단계가 되면 다음 단계는 ‘질문’이다. 마치 지하철의 옆자리나 버스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 말이다. 잘 모르는 사이였더라도 훔쳐보던 신문이나 책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여동생은 질문할 말을 찾는 동안, 내 대답을 듣는 동안 배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또한 나는 동생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호돌이와 호순이의 말과 행동을 꼼꼼히 살폈을 것이다. 호돌이와 호순이가 갔던 세계의 유명한 장소, 관광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단서가 될 만한 대화를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실마리가 될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등장인물의 관계는 어떤지 등등을 정리하고 동생의 언어로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고 반복적으로 읽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빠져있던 책들은 이른바 ‘학습만화’였다. 오랜 기간 –일반적으로 아동의 집중력을 고려할 때- 빠져 지냈지만 부작용은 없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우려와 달리 우리는 둘 다 그 만화책 이외의 독서에서 만화 형태에 머물려하지는 않았다. ‘호돌이, 호순이’ 캐릭터의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에 빠져 비슷한 종류만을 보려고 하거나 그리지도 않았다. 다른 매체는 제쳐두고 아예 애니메이션만을 탐닉하거나 심각한 비중으로 편식하는 시청각 습관이 형성되지도 않았다.



어쩌면 미디어 소양은 스스로 자정작용을 곁들여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학급문고에서 책등이 너덜거려도 꼭 그 앞에 줄을 서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려서라도 읽고 싶은 책, 학습만화 시리즈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특정 책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우리 반 학생들 전체를 앞에 두고는 아침 독서 시간에 학습만화를 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인기 높은 책들을 이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나는 아이들의 독서편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만약 독서의 균형이 걱정된다면 시리즈에서 읽은 내용을 친구에게 소개하거나 일기에 써보라고 하거나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학습만화에 빠져 있더라도 이를 다시 표현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에서도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습만화의 구어체를 그대로 발표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독서록이나 일기에 옮겨 쓰면서 한 번 더 사고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미디어소양을 잘 쌓아갈 힘이 있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갖출 사명은 과자나 휴대폰, 태블릿 대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돕고 어떤 모습으로든 책을 읽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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