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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Apr 04. 2024

그 언니는 장학사, 그 친구는 교감 2

그 친구 이야기

저자 되기 프로젝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장학사였던 H 언니는 이번 학기에 교감으로 발령이 났다.

그녀의 인사발령을 함께 축하한 친구, 나의 최근 고민을 모두 함께 해준 친구는 동일인물이다.

장학사 출신 H 언니도 그 친구 J도 나의 첫 발령지 섬에서 나와서 만난 '첫 동학년'이었으니 20년 지기가 넘었다. 장학사였던 언니는 여전히 멋지고 선망의 대상인데 만나기가 어려워졌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했었나 보다. 그렇다고 내 친구 J가 일을 많이 하지 않거나 한가했다는 말은 아니다. 더 자주 만나고 가까울 수밖에 없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벌써 수십 년 전. 어느 시기에 아파트를 계약하고 나왔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 J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이었다. 우리는 비바람이 불어닥쳐도 눈이 내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외출 준비하는 듯이 잘 갖추어 입지 않았을 때도 항상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J를 처음 만났을 때는 대하기가 사뭇 어려웠다. 뭐든 척척 해내고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도 친화력 있게 대해서 부담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와는 사회성의 색깔이 달랐다. 간혹 오해할 정도로 깎듯이 다른 사람을 섬겼다.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녀의 의전은 모두에게 같았는데 그걸 직접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의 섣부른 생각이었다.          

나는 그녀의 의전을 톡톡히 받은 적이 있다. 내 시아버님의 장례식을 치를 때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상조문화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가입한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이 정해지면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시간을 정하고 음식을 주문하여 손님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KTX기관사인 시동생의 직장 손님들이 열차를 타고 몰려왔다가 다음 열차로 돌아가곤 했다. 교대 시간이 있고 서울에서부터 많은 인원이 조문을 오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의 주방이나 서빙을 해주시는 분들은 시간이 되어 돌아가고 없는데 밤 열차 도착시간이 되자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때 한쪽에서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던 그 친구 J가 슈퍼맨처럼 나타났다. 운동을 했던 친구인데 키까지 커서 정말 그 순간 슈퍼맨을 마주한 것 같았다. 세상 여성스러운 거 좋아하는 여자 친구인데 표현이 미안하다, 친구야!

친구 J는 많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우는 일을 함께 해주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둘 키울 때였는데 남편에게 맡기고서 말이다. 몇 시간이나 묵묵히 일을 해주고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더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돌아갔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고마웠다.



그랬던 친구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게 되었으니 나는 행복한 2년을 보냈다.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던 날 친구는 이삿짐 차 앞에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내왔다. 너무나 맛있게 잘 구워져서 모두 잘 먹었는데 왠지 눈물이 자꾸만 났다. 아무 때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후로도 여전히 잘 만나고 있다. 이야기의 무게에 따라 어느 때는 차 한잔을 어느 때는 맥주잔을 들이키며 20년을 함께 해준 친구 J가 교감 연수를 받게 되었다고 해서 나는 뛸 뜻이 기뻤다. 너무나 장했다.

내가 크게 상실감을 맛보았을 때는 그 친구가 밤이라도 달려와 같이 마음 아파해주었다. 나보다 더 열심히 방법을 찾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찾았다. 그 친구도 내 일에 펄쩍 뛰며 함께 분노해 주어 잘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너지도 정도 넘치는 J도 야무진 H언니에 이어 교감 승진이 가까워져 발령을 대기하고 있다. 자격이나 업무처리 등 여러 면에서 우리 둘의 격차는 더 멀어지는 셈. 승진의 잣대로 마치 길이 두 가지만 있는 양 우리를 갈라놓는 이들이 많을지라도 우리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무엇을? 서로가 걸어온 길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보았고, 그 과정의 노력이 서로의 그 어떤 과정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자산임을. 어느 하나도 저울질할 수 없음을.


.

이 글을 쓰고 있자니 H 언니와 J와 나. 셋이 조만간 꼭 만나고 싶다. 우리가 외쳤듯이 오랫동안 함께 하고픈 그녀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 멤버, 리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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