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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an 30. 2024

건강검진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평일인지 주말인지,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간다.”


회사를 퇴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많은 공감이 간다. 회사를 나온 후 우리의 시간은 정처 없이 이렇게 흐르고만 있다.


회사에서 퇴직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지원하는 종합건강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다른 때처럼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검사를 받기 위해 아내와 함께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키와 몸무게를 재는 것부터 시작해 위내시경 검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아침 일찍 서두른 탓인지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모든 검사가 끝났다.


혹시 동료들을 만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작년까지는 매번 두세 명의 동료들을 만나 검사 중간중간에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단 한 명도 만나볼 수가 없었다. 올해가 이 병원에서 검진을 마지막이기에 동료들을 볼 수 없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컸다.


매년 반복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만 늘 불안함과 초조함이 엄습해 온다. 병원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환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단지 검사를 받는 것뿐인데 꼭 중병에 걸린 사람이 된 기분이다. 없던 병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앓고 있는 병이 더 악화되지는 않았는지...... 평소 잦은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내게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는 걱정을 더해준다. 별일 없겠지?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얻은 만성적 성인병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약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약 때문에라도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건강하기만 했던 청년이 일에, 사람에, 술담배에 찌들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다가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꼰대라 불리는 중년이 되었고, 만성화된 성인병은 그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가 되었다.


회사란 건강하게 입사한 청년이 젊음을 불사르다가 중년에 이르러 환자가 되어 나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건강 좀 잘 챙겨가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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