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 쌓일수록, 사고의 틀은 어느새 굳어가기 마련이다. 젊었을 때는 생각이 자유로웠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으며,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일터에서는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의 경계를 확장해 나갔다.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은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지점에 불을 밝혀주었다.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는 더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고, 매일같이 새롭게 변하는 세계는 나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내 삶의 속도는 느려지기 시작했다. 일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내 일상은 단조로워졌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이야기는 반복되었다. 생각의 폭은 좁아졌고, 깊이는 얕아졌다. 마치 내가 놓인 자리가 점점 더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경험에 나를 열어두기보다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경험이라는 울타리를 쌓아가지만, 그 울타리는 동시에 우리를 가둬버리기도 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이제는 내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처음에 이 변화를 느꼈을 때는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라 여겼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세상을 보는 시야도 좁아지기 마련이고, 사고의 틀도 굳어지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불편해졌다. 생각이 정체된다는 느낌은 답답함을 넘어 나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은 서서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한때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던 세상이, 이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자각. 그 자각은 어느 순간 나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갈수록 작아져만 가는 우물에 나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나만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시금 내 사고의 틀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선배들과 새롭기 일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너무 무지하다고 느끼는 속상함과 민망함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동시에 내게 필요한 자극이었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내가 몰랐던 세상,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삶을 접하는 일은 언제나 신선하고도 도전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나만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씩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 그들이 살아온 환경, 그들이 겪은 상황 속에서 얻은 지혜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지식과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부족함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지 못했는지를 깨닫는 순간마다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는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더욱 자극했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는 과정에서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게 된 이야기들, 그로 인해 생각이 변하는 순간들. 그 변화가 내게는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부분도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언제나 고된 일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설레는 감정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우물 안에서 안주하고 싶다는 유혹이 커진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경험했다는 자만과 내가 살아왔던 세계가 전부라는 착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 쉽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우물 밖에서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
나는 다짐한다. 나의 우물에서 조금씩 더 멀어지기로.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생각을 들으며, 나의 세계를 넓혀가기로. 그렇게 나는 생각의 틀을 깨부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물 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남은 최고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또 한 번 우물 밖을 향해 나아가야겠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