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울증은 외로움의 결과물

엄마로만 사는 건 쉽지 않더라

by 정파이

20대부터 아기 둘을 키우던 그 무렵의 나에게는 육아우울증이 생겼던 거 같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모두 부산에 있고 서울에서 시작한 신혼집은 외벌이가 되면서 2년에 한 번씩 점점 경기도로 밀려났다. 그 말은 동네 친구가 생길 만하면 새로운 곳에 던져졌다는 말이다. 나는 외로웠다.

종일 애기들하고 유아어로 대화하고 뽀로로만 보다 보니 어휘도 잊어버더라. 어른의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해도 단어가 생각 안 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은 유치원 하원 차량을 기다리며 야쿠르트 아줌마랑 첫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난 남편만 기다렸다. 남편만 보면 그날 하루종일 육아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따라다니면서 쫑알쫑알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우울하다고 울기도 했다.

그러면 무심하게 돌아온 이 부산 오빠야의 대답은

"나한테 징징거리지 말고 힘들면 부산 다녀와"


또는

"그렇게 우울하면 정신병원 가봐! 상담을 받던지 약을 받아먹던지! 난 우울증 환자 하고는 못살아!"

나는 저 하나만 보고 이 외딴곳에서 살고 있는데....


그렇게 난 점점 우울감이 깊어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도 외벌이에 고되고 집에 오면 징징대는 아내가 버거웠으리라. 그 역시 편안하게 쉴 곳이 없었겠지.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지금에서야 그의 입장을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생각일 뿐. 그 당시 나에게 5살 많은 오빠야는 기대고 싶고 인정받고 싶던 보다 한참 어른 같은 남편이었다. 그래봤자 그도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었을 뿐이었는데....


그때의 난 이렇게 더러운 취급을 당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아마 우리 아빠가 부자였다면 그때 이미 이혼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애기 둘 데리고 이혼해서 독립하기엔 내가 너무 용기가 없었다. 능력도 없었다.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만 난 애 둘 딸린 짧은 경력의 경단녀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돈 버는 방법은 고학력과 자격증, 풀타임 잡, 사무직 정도였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아주 좁고 작았기 때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유치원생과 아직 어린이집도 안 다니는 둘째가 붙어있었다.

왜 아이들을 기관에 다 맡기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땐 무상보육지원이 없었다. 소득과 재산을 정부에서 계산해서 선별적으로 지원해 주던 시절이었다.

무슨 조선시대에서 애를 키웠냐고 하겠지만 12년 전에는 그랬다. 당시 어린이집 비용은 35만 원 정도, 유치원 비용은 50만 원~70만 원가량이었다. 지금 쓰기에도 작지 않은 비용이다.


내 자아를 찾기 위해 그 큰돈을 애들한테 쓸 수가 없었다. 첫째는 유치원 반일반을 보내고 둘째는 내가 계속 데리고 있을 밖에. 난 매일 밤 어떻게 하면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빈약한 상상력을 동원하며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다 둘째가 두 돌 될 무렵 정부의 보육료 무상지원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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