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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Feb 05. 2024

윤희에게

부모님 마음

우리 애들이 초딩때 일이다.
파이집은 일요일만 쉬고 토요일은 정상영업을 하기 때문에 아빠가 간혹 집을 비우는 토요일이면 아이들을 파이집에 데리고 갔다.

그날도 애들을 데리고 간 어느 토요일, 영업 마감하려고 매장 정리 중에 밖에서 놀던 애들이 뛰어들어왔다.

"엄마 이것 봐! 돈 주웠어!!"

애들이 길에서 천 원짜리 정도 주웠나 싶어서 보지도 않고 그걸로 슈퍼 가서 과자나 사 먹으라고 했다.

"엄마~ 이거 그런 거 아니고 돈이 많은 거 같아. 이것 좀 봐!"

그제야 고개들고 쳐다보니 두 꼬맹이가 웬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20만 원???
아싸! 개이득... 하다 보니 손 편지가 있었다.

'윤희에게...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축하하고....'

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학생이 부모님생일 선물 받은 용돈을 흘린 건가 싶다.
편지를 보고 나니 슬쩍할 수가 없졌다.

근데 윤희가 누군지 어떻게 찾는담?


..................

파이집은 아파트 상가라 아파트 경비실에 맡길까 싶다가도 애들이 상가 슈퍼 앞에서 주웠다는데 어디 경비실에 갖다 줘야 할지도 애매했.
렇다고 슈퍼 아저씨에게 맡길 순 없었다. 그 아저씨 좀 이상고 괴팍해서 신뢰가 가질 않았다.

그날은 애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가게에 그대로 돈봉투를 남겨둔 채 귀가를 했.
그날 밤에 혹시나 싶어서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우리 단지에 윤희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분실한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썼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

월요일에 가게를 오픈하고 A4용지에 큼지막하게 써서 가게 유리문에 붙여뒀.

'윤희 어머니! 분실물 찾아가세요.'

이틀 정도 지나도 아무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난감했.
'아... 관리실에 갖다 줄까? 경찰서를 가야 하나?'

그런데 3일째 되 날, 내 또래 여자분이 오셔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거다.
"저... 제가 윤희인데... 분실물이 혹시 어떤 걸까요?"

으잉? 당연히 학생이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윤희라는 분이 온 거다.

"아... 저희 애들이 주워온 물건인데 무슨 물건인지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혹시 잃어버리신 게 어떤 건가요?"

내 입으로 냅다 돈봉투라고 말해주긴 그래서 역으로 물어봤.

"제가 아니라 저희 친정 아빠가 흘리신 건데 편지봉투에 편지랑 현금이 들어 있었을 거예요."

아! 그 말을 듣자마자 냉큼 내어 드렸다.

알고 보니 윤희 님이 우리 단지로 새로 이사를 해서 친정부모님이 딸이 새로 이사한 집도 볼 겸 딸 생일도 축하해 줄 겸 주말에 방문을 하신 거였다.

이사한 집에 가벼운 선물 사가려고 단지 내 슈퍼에 들리셨다가 친정아버님이 준비하신 봉투를 흘였다. 그걸 우리 애들이 주운 거고.

즐거운 가족 모임이 됐어야 했는데 아버님은 어머니한테 내내 구박받고 자책하다가 가셨다고.

그나마 이제라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부모님한테 빨리 연락드려야 되겠다고 기뻐하며 가셨다.

곧장 애들한테 이 소식을 알렸고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엄마가 됐다.
사실 편지만 아니었으면 쓰윽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나는 이후로 쓰윽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윤희 님은 그날은 경황이 없어서 파이 하나 못 사드렸다며 이후에 파이집에 종종 들러 파이를 사주시는 손님이 되셨다.

별일 아닌 사건이긴 한데 친정 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일 년에 몇 번 못 뵙는 나에게는 마음에 좀 남았다.

그날 마침 우리 애들이 봉투를 주웠고, 마침 윤희 님이 우리 가게 앞을 지나다가 윤희 찾는 글을 보아서 찾을 수 있었던 친정 부모님의 마음 담긴 봉투.

그걸 분실하셔서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하고, 그걸 보는 윤희 님 맘은 또 얼마나 상했겠는가.

그게 왠지 내 맘 같았다.

그래도 운명적으로 다시 주인 찾아 돌아간 봉투 이야기다.

설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뵈러 갈 텐데... 멀리서 그리워하던 마음과는 별개로 막상 만나면 뜻이 안 맞아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이번 설에는 듣기 싫은 잔소리를 좀 하시더라도 웃는 낯으로 들어드려 봐야겠다. 고장 난 카세트 돌아가듯이 옛날이야기를 반복하셔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드릴 결심도 같이 해본다.


용돈도 넉넉히 못 드리는데 마음이라도 넉넉히 남겨드리고 와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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