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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Mar 08. 2024

양호실과 보건실

나의 시대는 지나갔다

어제 오후에 주문 전화를 받았다.

미니 호두파이 30개를 당장 내일 아침에 배달받을 수 있냐는 문의였다.

시간이 빠듯하긴 지만 준비가 가능할 거 같아 주문을 받았다.


"어디로 배달해 드릴까요?"


"여기 ○○마을 ○○초등학교 보건실로 가져다주세요."


엇... 우리 아이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다.

이미 졸업한 학교이지만 아직 그 학교 학부모인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보건실 위치를 물었다.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서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등교로 바쁜 아이들은 성의 없게 대답해 주고 나갔다.

한 놈은 왼쪽, 한 놈은 오른쪽이란다.


나쁜 놈들... 내가 그냥 간다 가!


학교에 도착했다.

머릿속으로 보건실을 되뇌며 중앙 현관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어린 학생 하나가 지나갔다.


"! 학생, 여기 양호실이 어디야?"


"양호실이 뭐예요?"


어엇...머리로는 보건실을 생각했는데 입에서는 그만 양호실이 튀어나왔다.

머리와 입이 따로 놀아 어버버 하고 있는데 학교지킴이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요새는 양호실 말고 보건실이라고 해요. 따라오세요~"


친절하게 보건실 앞까지 안내해 주셨다.

저도 알아요... 보건실... 크흡


내가 어릴 때는 양호실에 양호 선생님이 계셨는데 요새는 보건실에 보건 선생님이 계신다.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들어서 보건실이라고 알고 있는데도 내 무의식에는 여전히 양호실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많이 달라진 환경과 수업들...

요새 아이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교련 수업 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애들은 나를 마치 전설 속 인물을 바라보듯 쳐다본다.

체벌도 없고 두발 단속도 없는 시대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제 정말 내 시대는 지나갔음을 느낀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옛날 사람이 되었다.

그래, 나는 국민학교 졸업하고 회수권으로 버스 타고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고 워크맨으로 음악 들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주도해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어쩐지 요즘은 뒤쳐지는 기분이 든다.

열심히 흐름을 놓치지 않고 좇아가보지만 이미 내 시대는 흘러가버다.


세상이 나를 두고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아니다. 안된다. 아직은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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