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십견이요...?
이제는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되었다
어깨가 아팠다.
어느 날 스트레칭을 하려고 엎드려서 팔을 짚는데 왼쪽 어깨가 찌릿거렸다.
그냥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점점 더 아파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파이집을 비울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사실은 병원 가기 귀찮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왼쪽 팔이 높게 안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두파이 배달을 가서 아파트 입구 차단기 호출 버튼을 누르려고 차창 너머로 팔을 쭉 뻗었는데 악! 소리가 날만큼 어깨통증이 느껴졌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오십견.
"선생님, 저 아직 오십 되려면 멀었는데요?"
"오십견은 오십에만 오는 게 아니에요."
'쩝... 그렇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괜한 심술을 의사 선생님한테 한번 부려봤다.
이리저리 살펴본 의사 선생님이 그러신다.
"본인 몸에 둔감한 편이에요? 꽤 아팠을 텐데 왜 이제야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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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집을 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베이킹을 우아하게 바라보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동네 할머니들이 파이집에 오셔서 "나도 10년만 젊었으면 이런 파이집 해볼 텐데..." 하실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집에서 소량을 예쁘게 만드는 베이킹은 우아한 취미일지도 모른다. 할머니들도 젊으실 때 취미로 베이킹을 해보셔서 쉽게 하시는 말씀일 거다.
제과제빵도 기술직이다. 노가다라는 말이다. 체력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서서 작업을 한다. 제품을 만들어 오븐에 넣어놔도 쉴 시간이 없다.
재료 준비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포장도 해야 한다.
작고 예쁜 디저트를 만든다고 해서 재료도 작고 예쁜 건 아니다.
영업용 재료는 단위가 크다.
밀가루가 20킬로, 설탕은 15킬로, 호두는 11.34킬로, 버터도 10킬로 단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거운 걸 들어 날라야 한다. 소분된 걸 산다면 그럴 필요 없겠지만 단가가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그럴 순 없다.
하루 최소 8시간을 서서 작업하며 무거운 걸 들어 나르고 재료 준비에 힘을 쓰다 보면 어깨, 손목, 허리, 무릎... 남아나는 곳이 없다.
종일 서있다 보니 하지정맥류도 생긴다.
그나마 나는 제과류라 좀 낫다. 제빵은 정말 중노동일 거다. 재료 배합과 빵 반죽의 무게부터 감당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커다란 반죽기에 빵 반죽을 쳐서 그걸 꺼내 작업할 생각을 하면 벌써 허리가 휠 거 같다.
소량의 주문을 받아 고퀄리티로 만들어 주고 금액을 높게 받는 케이크 가게를 했더라면 좀 나았을까?
내가 하는 파이집은 그런 곳이 아니다. 열심히 물량을 만들어 내야 한다.
파이집에 단체 주문이라도 있는 날엔 12시간 이상 서서 일하다 밥 먹을 시간도 놓친다. 게다가 오븐 일은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면 화상의 위험이 항상 있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다. 초기엔 덤벙대다 화상을 입기도 했었다.
길게 풀었지만 그래서 결국 베이킹은 노가다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몸이 아픈 건 당연했다.
한동안은 팔꿈치가 아팠고, 또 한동안은 무릎이 아팠다. 몸 쓰는 일에 당연히 따르는 대가로 생각하고 견디다 보면 또 어느새 회복이 됐다. 그렇게 어깨도 견디다가 이번엔 탈이 제대로 났나 보다.
마흔이 넘으면서 구석구석 안아픈 곳이 없다는 지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왔다. 나도 마흔이 넘으면서 은근 걱정이 됐는데 수년이 지나도 별일이 없어서 방심을 했나 보다. 사십은 패스하고 오십견으로 먼저 앞서 가버렸다.
내 몸은 늘 뒷전이었다.
파이집을 하면서 아이들도 키워야 했고 집안 살림도 혼자 책임져야 했다. 남편은 회사일로 바빴고 그 와중에 마음의 병도 얻어 한동안 본인과 주변이 힘들었다. 그런 그를 다독이고 챙기는 것도 내 몫이었다.
돌아보니 지난 10년간 내 몸과 마음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얼굴만 봐서는 아직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흰머리는 꽤나 많다. 지난 세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다그치며 살아와 산화된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 몸을 돌볼 정도의 여유는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병원 갈 마음도 내었겠지.
파이집도 아이들도 남편도 이제는 적당히 알아서들 굴러간다. 이제는 나를 돌볼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