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파이 Apr 13. 2024

버터와 계란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손님이 묻는다.

"혹시 파이 중에 버터랑 계란 안 들어간 것도 있나요?"

"아뇨~아쉽지만 그런 건 없어요. 그 두 가지를 빼고는 만들 수가 없는걸요."

제과를 만들 때 빠지지 않는 재료가 있다면 버터와 계란이다. 그 둘은 제과류에서 부드러움과 풍미를 담당하며 절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렇지만 사실 둘은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이다.
성질로만 따지자면 버터는 기름이고 계란은 물에 가깝다. 특히 익히지 않은 흰자는 물 그 자체다.

물과 기름...
섞이지 않는 두 재료를 잘 섞어내야만 품질 좋은 제과류를 생산할 수 있다.
그 섞는 과정을 크림화시킨다고 한다.
버터와 계란을 섞어 크림화시켜줄 때 필요한 건 적당한 온도, 적당한 양 그리고 타이밍이다.

마치 인간관계나 결혼 생활에 필요한 덕목 같기도 하다. 친구,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잘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비슷한 조건이 필요하다.

적당한 실온 온도의 버터는 크림화되기 위해 계란을 기다린다. 때 버터는 차가운 계란을 싫어한다. 잘 섞이기 위해 자신을 기껏 실온으로 맞춰뒀는데 냅다 차가운 계란이 들어오면 버터는 화를 내며 계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섞이지 않고 분리된다. 물과 기름처럼.

인간 관계도 서로를 잘 맞춰야 한다. 한쪽만 상대에게 노력해선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없다. 나는 상대에게 맞추려 노력하는데 상대는 무심해 보인다면 그 마음을 계속 이어가기는 무리다.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것만 요구해도 결국 둘 사이는 분리된다.

혹시 지금 뭔가 삐걱거리는 관계가 있다면 내가 받고 있는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자. 어쩌면 밀어내는 건 그가 아니라 무신경한 나일수도 있다.

버터와 계란의 양도 중요하다.
넉넉한 양의 버터만이 물 같은 계란을 품어낼 수 있다. 버터가 자신을 충분히 내어주지 못한다면 계란은 또 겉돌게 된다.

사람 사이도 진정으로 가까워지길 원한다면 우선 나를 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곁을 주지 않고서는 아무도 가까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를 얼마나 내어줄 것인지 그 정도를 정하는 것은 늘 어려운 문제다. 베이킹은 레시피가 있지만 인간관계는 얼마나 어디까지라는 기준이 없다. 결국은 진심이 필요하다.

그다음 중요한 포인트는 타이밍이다.
버터를 풀어줄 때 계란을 한 번에 다 넣으면 안 된다. '지금이니? 지금이니?'를 중얼거리며 때를 봐서 계란을 적당량씩 나눠 넣어 줘야 한다. 성급하게 계란을 빨리 섞었다가는 이 또한 바로 분리된다.

사람 사이에도 타이밍이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타이밍, 사과를 해야 하는 타이밍, 감사를 표하는 타이밍....
그 적당한 타이밍을 놓치다 보면 어느새 저만큼 분리되어 버린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한번 분리되어 버린 버터와 계란은 쉽사리 복구하기 어렵다. 그나마 분리가 된 초반에는 여러 조치를 취해볼 수 있다. 휘핑 속도를 올리고, 밀가루를 조금 넣어보기도 하고, 따뜻한 물을 볼 아래에 받쳐 보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균열은 무엇으로 복구할 수 있을까. 더 세게 부딪혀 보기도 하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마음을 풀어주기 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버터와 계란만큼 서로에게 노력하고 있을까. 나를 너무 내세우며 상대에게 나를 품어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결국 관계라는 건 한쪽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는 배려가 필요하다.
섞이기 어려운 버터와 계란이 결국은 부드러운 크림으로 재탄생되듯이 서로 어우러져야 '우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만들어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이그림 작품 전시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