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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Jun 30. 2024

무엇을 먹고 사는가

가재의 먹이

가재 사육에 대해 검색하다가 "가재가 노는 물은 쓸쓸하고 롭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재는 잡식성이라 근처에 있는 생명체를 모조리 먹어치워서 결국 혼자 남는다는 말이다.

단독 사육을 해야 하는 이유이도 하편으론 이를 가리지 않 때문에 키우기 재밌기도 하다.


기본적인 먹이 가재용 사료를 지만 물만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사실 어떤 종류도 가능하다.

새우살, 조갯살, 마른 멸치, 먹다 남은 회 조각, 당근, 시금치... 심지어 꾸이맨(어포 튀김)까지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다.

먹이 반응이 좋기 때문에 먹이주는 즐거움이 있다.

지속적으로 한 가지 먹이만 주면 거식증 걸린다는 설명이 있어 다양한 먹이를 급여했다.

먹이를 내놓아라 주인아!

김가재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집게를 치켜세우고 어항 벽면에 매달리곤 했다. 먹이를 달라는 신호인지 그저 재롱인지 모르겠으나 나중엔 그렇게 하면 밥을 준다는 걸 알아챈 같았다.


먹이를 주면 집게발을 이용하지만 보통은 두 번째, 세 번째 다리에 있는 작은 집게를 더듬거려 먹이를 가져간다.

입 앞에는 턱다리라고 부르는 작은 다리가 있 인간의 손처럼 사용해 먹이를 붙잡고 뜯어먹는다.

가재가 먹이를 스텝으로 끌고 가서, 은신처나 구석에 숨어 먹는 걸 보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모게 된다.


어린 가재는 활동이 많은 만큼 식욕도 왕성하다. 사료도 잘 먹고 육식 즐긴다. 간혹 같이 합사 되어있는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고, 다른 가재가 탈피해서 약해졌을 때 동족포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단독사육을 하는 게 좋다.


김가재도 한참 혈기 왕성할 때는 자고 나면 열대어가 한 마리씩 없어지기도 해서 서바이벌 어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항 중간을 플라스틱 망으로 막아 물고기와 분리해 뒀는데도 밤새 망을 타고 넘어가 열대어를 해치우곤 했다.

평소에 움직이는 걸 서는 그렇게 잽싸지 않은데 어떻게 저 빠른 열대어들을 잡아먹을까 궁금했다. 유심히 지켜보니 가재는 야행성이라 밤에 돌아다니고, 물고기들은 어두울 때 바닥에 배를 대고 잠을 자니 속수무책으로 잡아 먹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재도 나이가 들면 식성이 변한다. 마치 사람도 어릴 때는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다가 나이 들수록 슴슴한 음식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김가재도 갈수록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했다. 그래서 김가재가 먹을만한 알몬드잎을 넣어주기도 하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야채를 작게 썰어 넣어주기도 했다.

이때부터는 눈앞에 열대어가 왔다 갔다 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김가재가 은신처에서 잘 때 열대어가 자기 앞에 배를 고 있자 귀찮은지 집게로 밀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가재나 인간이나 나이들면 활력이 떨어지는 건 비슷한가 보다. 그렇게 어항 구석구석을 제 세상처럼 휘젓고 다니더니 어느 순간부터 만사 귀찮아하 모습이었다.


그럼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사랑? 관심? 인정? 성취감?

그 역시 시기마다 다른 것 같다.

어릴 때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살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주변의 인정으로 살아낸다. 그러나 결국 다시 필요한 건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가재 어항에 지극 정성이던 남편은 김가재를 위해서 이런저런 변화를 줬다.

은신처를 바꿔주기도 하고, 바닥재를 바꿔주기도 하고, 물풀도 심어주고, 어항이 비좁아 답답할 거라며 어항 사이즈를 점점 키워주기도 했다.

김가재가 아무래도 사냥을 즐기는 것 같다며 생이새우 100마리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굼뜬 김가재가 새우를 잡아먹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새우가 탈피한 껍질을 주워 먹거나 자연사한 새우 사체를 집어 먹는 정도였다.


남편이 김가재에게 공을 들이는 모습은 마치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 같았다. 치열한 직장 문화에서 성취감과 인정을 얻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노력하던 그는 이제 다시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구했다.

김가재가 심심할까 봐 걱정하며 이리저리 살펴주고 새로 세팅해 주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자신도 저렇게 누군가 살펴주기를 바라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다.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기대를 한껏 받으며 항상 우수하고 뛰어난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했던 아들.

직장에서 실패 없는 성과만을 위해 달렸던 직원.

본인이 이룬 가정에서 자신만만하고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 아빠.

그러나 어느 역할도 그에게 녹록하지 않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주변에 대한 원망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누구도 그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본인도 벅차고 괴로웠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발맞춰가야 던 나 역시 이 턱에 차도록 버거웠다.


이제 그런 압박에서 약간은 자유로워진 그가 가재 어항을 바라보는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였다. 마치 가재가 노는 물처럼.

나는 그저 그가 외롭지 않게 그의 곁에서 그가 만들어 놓은 파라다이스인 가재 어항을 같이 들여다 봐주며 함께 웃어. 그 시간만큼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 김가재의 꾸이맨 먹방


어느 날, 남편이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평소 맥주 안주로 먹던 꾸이맨(어포 튀김)을 잘라 김가재 먹이로 줬는데 꾸이맨을 붙잡자마자 갑자기 공중부양하떠올라 버렸단다.

많이 먹으라고 평소보다 큰 사이즈 잘라줬더니 무방비로 떠올라 버려 김가재는 당황하고 남편은 웃음이 터졌다.


한편으론 가재의 욕심도 인간과 다를 바 없싶다.

집게를 놓으면 그냥 하게 내려갈 수 는데도 맛있는 먹이를 포기할 수 없어 들게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꾸이맨과 공중부양한 김가재

이 재미있는 장면을 나만 못 봤다고 아쉬워했더니 며칠 뒤에 남편이 다시 꾸이맨을 잘라서 어항에 넣어줬다. 꾸이맨의 부력에 한번 당해본 김가재는 이번엔 떠오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필사적으로 옆 그물을 붙잡고 버텼다. 부력과 싸우면서도 틈틈이 꾸이맨을 뜯어먹모습어찌나 습고 귀여운지 동영상으로 찍어놨다.


김가재의 꾸이맨 먹방을 보며 <가재 먹이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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