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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아들과 진솔하게 대화한 날

by 윤서린

어제 아들 둘만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딸 둘은 피곤해서 안나간다고 한다.


넷을 다 데리고 외출하기는 로또 5등 당첨되기보다 여려울지도 모른다.


막 성인이 된 셋째 아들과 초등 5학년의 막내아들, 나 이렇게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셋째랑은 거의 10년 가까이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같이 외출한 적도 다섯 손가락에 뽑힐 정도다.

마치 하숙생과 하숙집 아줌마와 같았던 어색한 관계.


(내가 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사춘기 아이와 감정 교류를 거의 못했다. 1년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약도 끊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아이와 대화할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의 내 상태를 솔직히 고백하고 아이에게 지난 10년을 사과했다. 작년 가을부터 서서히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


고기를 불판에 구우며 아들과 모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 많이 먹어…. ”. “내일 학교 가니? 과제는 어려워?” 이런 일상 대화에서 시작해서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아들 방 책꽂이에 꽂혀있던 <자기 관리론>, 물론 아들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책을 샀다는 건 (심지어 자기 용돈으로 산 책) 뭔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테니까.


마침 나도 새벽독서로 그 책을 읽고 있으니 대화 주제로 좋을 것 같았다. 어제까지 읽었던 이야기를 성인이 된 아들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며 들려주었다.

아들은 다행히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 신이 나서 그랬는지 폭탄주 한 잔을 마셔서 용기가 났는지.


나는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아들의 꿈과 관심사에 대해 물었다.

이걸 묻기까지 10년이 걸리다니...

대학진로도 같이 고민하지 않았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갔다.


사회, 정치, 역사 쪽을 좋아하는 건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고 얼핏 알았지만 자기가 요즘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나는 또 반가워서 엄마도 마침 요즘 고전과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데미안"을 권하고 내가 읽었던 "싯다르타" 이야기를 해줬다.


인생에 있어서 경험은 말이야. 자기가 직접 경험해서 깨달아야만… 블라블라~~~


아들이 들어주니 신나서 떠들었는데

어느새 아들은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술에 대한 자신의 에피소드로 나한테 털어놓고 대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하며 새롭게 생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고민되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엄마도 지금 인간관계 고민 중인데… 블라블라~~


야무지게 고기추가하고 백김치말이국수랑 파채에 볶음밥도 볶아서 박박 긁어먹으며…


최근 새벽독서 시작하면서 달라진 내 생활 이야기도 하면서 너도 지금 이 순간에 읽어야 할 책들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저녁식사 자리가 끝났다.


피곤해서 집에서 쉴까 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나왔는데 아들들이랑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가로등아래 벚꽃도 스치듯 보고 이런저런 속내도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대리운전해 주시는 어르신이 낮에는 손주를 보고 저녁에는 짬짬이 대리운전을 하시는데 둘째 손주가 애교가 많아서 웃을 일이 많다고 이야기하신다.


사람들은 모두 제 각각의 삶에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

너무 소중하다.


셋째 아들과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피곤함도 잊혔다.


분명 배부르다고 했는데… 막내가 일어서서 야무지게 눌어붙은 밥을 긁어 형과 엄마 입에 넣어줬다. ㅎㅎㅎ



행복이 뭐 별거 있나.. 싶다.

이런 ”ㅎㅎㅎ“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의 ”행“자를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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