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릭 루빈 <창조적 행위:존재의 방식>
최고의 예지는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곧 최고의 자기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인류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고의 예지는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아는 바이니, 곧 최고의 자기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125면)
진정한 길은 좁아서 한 사람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_ 류시 말로리
진정한 길은 좁아서 한 사람씩밖에 들어갈 수 없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군중과 함께 걸어갈 것이 아니라 부처나 공자, 소크라테스, 그리스도 같은 고독한 사람의 뒤를 따라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우리 모두를 위해 차례차례 똑같이 좁은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_ 류시 말로리 (125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다.
_ 홀름스
네 인생의 사명이 네 행위를 규정해야 한다
너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공통된 목적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명과 동일한, 네 인생의 사명이 네 행위를 규정해야 한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기억나는 것은 단순 지식을 수집하고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지식을 탐닉하는 것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완성에 힘쓰는 것,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지식을 수집하고 다니는 학자는 불쌍한 사람이다. 끝없는 지식욕에 쫓겨 스스로를 높이는 철학자들 또한 불쌍한 사람이다. 이 나쁜 부자들 은, 옆에서 라자로가 계속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을 때, 날마다 그 지적 유희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헛된 지식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 되어 있다. 그들의 쓸모없는 지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적 완성이나 사회의 향상과 진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_페늘롱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학문을 배울 때 일정한 한도를 지키고 그것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다. 그는 예를 들어 기하학, 천문학의 경우 일반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고등이론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종류의 학문에 너무 열중하면 "가장 중요한 도덕적 자기완성에 써야 할 시간과 정력을 잃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127면).
우리는 온몸, 온 자아로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소리와 함께 존재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귀나 마음으로 듣는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우리는 온몸, 온 자아로 듣는다. (95면)
헤드폰은 실제적인 듣기 경험의 형편없는 복제품이다
헤드폰은 감각을 속여서 음악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티스트들 중에는 스튜디오에서 헤드폰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헤드폰은 실질적인 듣기 경험의 형편없는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사용하면 실제로 들리는 악기 소리에 더 가까워진다. 진동하는 소리의 전체 스펙트럼으로 들어가게 된다. (96면)
릭 루빈은 우리가 무엇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듣는 행위가 아닌 주변의 공간을 채우는 진동, 음파, 내적인 신체 반응, 온몸, 온 자아를 통해 듣는 것이라 말한다. (96면 참고)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악을 들을 때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충분히 듣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신 운전할 때 차에 있는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듣는다. 확실히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나에게 전해지는 에너지는 스피커를 통해 온몸으로 음악이 전달될 때보다 더 크다.
릭 루빈이 음악을 눈을 감고 듣다 보면 음악이 사는 곳에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데 오늘 밤에는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들어봐야지.
새벽 출근길, 스피커 최대치 (물론 내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를 틀고 새벽녘으로 어스름한 빛과 공기를 가로지르며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