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한

[읽고 쓰기 155일 차] <작은 파티 드레스>, <걷는 독서>

by 윤서린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서문]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맹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는다.


봄쯤에 49페이지 정도 읽다 덮어두었던 책인 것 같다.

오랜만에 줄 친 부분을 다시 읽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그냥 스쳐갔던 문장에 다시 발을 담가본다.


[서문]에 작가는 우리가 어려서 글자를 깨우치며 겪게 되는 변화를 말한다.

그는 우리가 어려서 낱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심장에 밑줄을 긋듯이 배운다고 말한다.

각각의 모음에 붉은 피로 밑줄을 그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고독을 배운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타자를 지향하는 글이 아니라면 흥미로운 글일 없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체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을 권의 책을 바로 그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이다.(31면)


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존재,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건드릴 수 없는 건들을 건드리기 위한 글을 쓰라고.


지금 나의 글은 내 안에 갇혀 쓰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날이 오길 바라본다.

나를 넘어서서 타인을 향한 글.


그 안에서 나와 그들이 공감하고 성장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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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걷는 독서>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삶의 여정일까?

지금 나의 앞이 막막한 건 그런 것들의 부재는 아닐까?


중심을 단단히 잡고 싶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등지고 걷고 싶지 않다.


오늘도 찬찬히 나를 걷을 준비.


박노해 시인의 이 문장을 가슴에 담아 정신의 무게를 늘리고 더 이상 바람에 휘청이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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