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 154일 차] 헤르만 헤세 <나로 존재하는 법>
헤르만 헤세의 청소년 시기의 방황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고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정해진 삶을 살기를 거부했던 소년.
학교 제도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년.
신경이 예민한 소년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겪는 좌절과 원망.
헤르만 헤세의 불안했던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의 편지글로 이 책의 초반부가 채워졌는데 읽으면서 좀 힘들었다.
나를 억압하는 것과 내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갖는 기대치가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하면서 읽었다.
오늘은 [수영선수가 되어볼까]라는 제목이 붙은 글을 읽었다.
세월이 훌쩍 흘러 이제 문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예순이 넘은 헤르만 헤세의 하루가 담겨있다.
그는 이삼십 년 넘게 문학을 하면서 친구도 많이 얻고 적도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
매일 그에게 오는 우편물에는 글을 좀 써달라는 신문사의 원고청탁 편지나 독자들의 인사와 바람, 조언등이 담겨있다.
이날은 이웃 은행원이자 수영선수인 H에게 온 우편물을 헤세가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읽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어쩐지... 과분할 정도로 좋은 내용의 편지가 가득하더라니.
헤세는 살다 보니 이런 멋진 날도 있다며 좋아했는데 안타깝게 본인 편지와 소포가 아니다.
선물로 들어있는 검은 수영복을 보며 헤세는 차라리 자신도 수영으로 전향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어릴 때 제법 민첩하고 수영도 잘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시니어 수영대회에서 주목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그는 H가 어머어마하게 먼 거리를 10분에 완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헤세는 "문학"이야말로 무궁무진한 목표와 과제들이 있기에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나는 내 '수공업'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수영이랑 잉어랑 농어에게 맡겨두고 나는 계속 글이나 써야겠다. (...) 봄에 관한 시랄까, 혹은 나무에서 돋아나는 끈적끈적한 새순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와 그것이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랄까. 새싹처럼 푸릇푸릇 피어나는 마음의 일을 언젠가 어느 정도 마음에 들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일이 힘들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나는 내 '수공업'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생의 과업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생의 과업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30년 넘게 글을 쓴 헤르만 헤세도 자신 안에 피어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힘들다고 말한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뭔가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지난 반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일상과 노랫말과 책으로 글쓰기 연습을 한다.
때로는 이렇게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연재가 끝난 <우리 아이는 난독증입니다>의 브런치북이 내게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때 그 감정을 글로 담아내며 많이 울고 위로받았었다.
연재가 끝난 후 그 브런치북을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인지, 이제는 해소되어 잠시 그냥 두어도 된다고 느끼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이 동할 때 글을 다시 열어보고 다듬어서 프린트해 보관하고 싶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과업이 "문학"임을 어려서부터 알았고 그 길로 몇십 년을 걸어왔다.
나는 내 삶에 어떤 과업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목적, 목표.
그런 것들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정신과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은 한동안 손을 놓았던 시를 써볼까 싶기도 하고 지금에 나를 표현하는 노랫말을 써볼까 싶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문학이라는 '수공업'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것. 나만의 이야기.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 아침에도 나만의 속도로 쉼 없이 책과 글이라는 물레를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