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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지 말고 그냥 그려도 돼요

중년 취미 미술 - 아이패드 드로잉

by 윤서린
2024. [빨간 열매], 디지털 드로잉, SSG 그림

세상 참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캔버스가 없어도 물통과 물감이 없어도 24색 색연필이 없어도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


1년 넘게 화실을 기웃거리다 용기 내서 시작한 아크릴화 그림처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첫 도전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패드라는 신문물을 접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디지털 패드는 그냥 유튜브 볼 때나아이 학습지 시킬 때나 썼던 것인데 이걸로 그림을 그린다니.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많은 그림들이 디지털 드로잉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뭔가 그들처럼 귀엽고 멋지고 예쁜 것들을 마구마구 그리고 싶었다. (아이패드 사면 다 그렇게 잘 그리는 게 되는 줄 알았다;;;)


2024년에 색연필 느낌을 살려 세밀화처럼 그려본 첫 그림, 빨간 열매.

당시 이걸 몇 시간 동안 그리고 혼자 뿌듯해서 좋아했던 게 생각난다.


패드를 이용한 그림은 프로크리에이티브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다.

기계치인 나는 ‘레이어‘가 뭔지 채색도구의 질감이나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혀 몰랐다.

화실 작가님께 기초 기능을 배운 후 정말 디지털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을 못 살리고 아날로그 방식처럼 채색하고 그렸다.

아래 영상에서 보면 알겠지만 디지털 프로그램을 쓸 뿐, 종이에 색연필로 그리듯이 한가닥씩 여러 색을 반복적으로 입히는 걸 볼 수 있다. 영상은 30초로 축약했지만 남모를 몇 시간이 그 안에 있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 다는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뜻과 같았다.

손가락 두 개로 터치하면 ‘되돌리기’ 기능으로 어긋난 선을 되돌릴 수 있다.

색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지우고 채울 수 있으니 망칠까 부담이 없다.

다만 어느 정도 기본 기능을 익혀야 재미가 붙는다.

그 기본 기능 익히기를 귀찮아해서 대충 그려봐야지 하고 덤비면 금방 싫증이 난다.

바로 내가 그랬다. 결국 1년 넘게 아이패드를 덮어뒀고 유튜브 시청용으로 다시 전락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아이패드와 갤럭시 패드를 이용해 디지털 드로잉을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처럼 장비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용량도 크고 좋은 최신형 아이패드를 사고 싶은 충동이 들겠지만 부디 처음에는 참길 바란다. (사실 나도 12인치 아이패드를 살 때 큰 맘먹고 샀는데, 중고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본인이 꾸준히 재미있게 할 자신이 있다면 사실 그 돈은 아깝지 않다.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디지털 드로잉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재미로 해보고 싶은 분들은 그냥 가족들 패드를 빌려서 조금씩 그려보다가 본격적으로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좋은 걸로 사도 늦지 않다.

어차피 기계는 몇 달 사이에도 최신형이 쏟아진다. 굳이 미리사서 중고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자신의 그림으로 전시나 제품을 기획해서 만들거나 본격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을 살게 아니라면 적절한 선의 가격의 패드를 사서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제는 아파서 화실에서 그림을 못 그렸다.

그래서 저녁에 아이패드를 이용해 벌레 먹은 작은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그려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2025. 11. 29. [벌레 먹은 플라타너스 잎사귀] 디지털 드로잉, SSG 그림

오랜만이라 역시나 버벅거렸지만 그리고 나니 또 나름 괜찮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하다.


그림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어도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패드는 그런 면에서 그림 초보들에게 좋은 도구다.

망쳐도 얼마든지 수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레이어“ 기능만 잘 사용한다면!!!!

나는 매번 레이어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서 세세하게 수정할 때 멘붕이 온다.

(레이어 : 투명 필름지처럼 겹겹이 그림 위에 쌓아서 그 위에 각각 그리고 수정할 수 있다)

“타임랩스”기능으로 작업물 영상 기록하기도 잊지 말고 설정해 두면 좋다.

본인이 그린 그림이 영상으로 남아있으면 디지털 드로잉이라는 딱딱한 느낌에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고 작업 과정도 볼 수 있으니 꼭 그 기능을 사용해 보길 바란다.


정말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면 지금 집에서 유튜브용으로 사용하는 패드에 프로그램을 깔고 동그라미 하나, 하트 하나라도 그려보는 건 어떨까?


나처럼 집에서 패드로 그림 그리는 자녀가 있다면 그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기초 강연을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 물론 공짜는 안되고 피자라도 한 판 사줘야 선생님도 제자를 가르칠 애정이 샘솟는다.

다만 매번 똑같은 거 물어보면 짜증 낼 수 있으니 잊지 않게 반복해서 자주 그려 기능을 익히는 게 좋다.

오늘도 고양이 그림 그리다가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우고 싶었는데 레이어를 추가하지 않아서 배경 안 지워지게 지우려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다 ‘제발 레이어 기능을 쓰세요 ‘라고 한 소리 들었다.


기계치라 분명 쉬운 도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리는 재미가 분명 있다.

모두 겁내지 말고 나처럼 그냥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본인의 재능이 때를 만나 뒤늦은 빛을 발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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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때 쓴 예명은 SSG (‘쓱‘)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이름 짓는 거 좋아하는 일관성 있는 나다.


* 디지털 드로잉 첫 세밀화 작업 영상, 30초 안에 몇 시간이 있다.

2024. [붉은 열매]

2025. 11. 29. [벌레 먹은 플라타너스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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