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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Dec 29. 2023

꽃보다 예쁜 여자

꽃과 나


브런치작가가 되어 첫 글을 발행하기 전, 가장 힘든 부분이 ‘작가소개’를 채우는 것이었다.


나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바로 꽃이다. 꽃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 이름을 따서 문학가가 되라는 희망을 담으셨다.,


그래서인지, 장래희망란에는 망설임 없이 문학가라 썼다. 대학도 엄마가 희망하는 대학의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죽으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고 있는 ‘꽃을 사랑하는 공예가’이다.


“꽃보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 꽃을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론, 외면이 아닌 내면입니다.”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반장이나 회장을 놓쳐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 무늬만 여자, 여장군, 회장님…‘이라 불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동창회 모임에  왕언니로 나가셨는데 모두들 ’ 호랑이 언니’ 라 불렀다.


30대 말부터 자연을 즐기려 공기 좋은 경기도 고양시에 땅을 사서 나무와 꽃나무를 한두 그루 심기 시작한 엄마는 금세 조경사업가로 변신했고 땅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이름은 ‘예쁜조경’이라 했다.


여자가 운전하는 건 드문 시기에 빨간 자동차를 몰고 시골에 나타나는 멋쟁이 엄마를 그곳사람들은 모두 ‘예쁜이 회장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나이보다 항상 십 년 이상 젊어 보이셨다, 하늘나라 가시기 몇 년 전까지도 조경사업을 하셨다.


우리 집 마당에도 꽃나무로 가득 차서 꽃피는 봄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하며 꽃구경하러 들어왔다.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꽃과 나무와 함께 자랐다.





능력 좋은 엄마는 항상 바쁘셔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빈 집이 나를 맞아주었다. 아빠와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에게는 내가 그런 공허함을 대신 채워주고 싶었다.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 누나는, 내게 누나이자 엄마야”


2008년, 아빠를 북경에 오시라고 해서 한 달 동안 모셨는데, 내가 잠깐 외출한 사이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바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날 아침, 나는 왜 그렇게 아빠한테 신경질을 냈는지 모른다. 아빠가 나를 본 마지막은 나의 그런 모습이었다.


“엄마한테는 무조건 돌아가시는 날까지 잘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도 결국엔 엄마가 하늘나라 가시기 전, 엄마에게 남긴 나의 마지막 모습도 똑같은 것이었다.


부모는 우리 곁을 언제 떠나가실지 모른다. ‘오늘이 효도할 수 있는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해라 ‘ 는 말을 꼭 가슴에 품고 살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엄마가 평생 일구고 남기고 간 모든 땅과 나무를 동생에게 양보했다. 왜? 나는 동생의 엄마이니까. 엄마는 무조건 내리사랑 하는 사람이니까.





87세의 엄마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강했다. 친구 손을 잡고 병원을 데려가 주었고, 걸음 빠른 내게도 뒤지지 않았다. 2020년 8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엄마가 갑작스럽게 간암말기, 폐전이 판정을 받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호스피스병원은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입원시켜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는 치료를 하는 곳이다. 보호자나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나 암으로 임종을 앞둔 노인들이 많이 가는 요양병원도 있다. 요양원은 요양병원과 달리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곳으로, 치매나 중풍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주로 가는 곳이다. 엄마는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아 했고, 나도 모든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모셨다.


엄마가 잠들면 새벽에는 인터넷을 뒤지며 간암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때 사실 정확한 근거로 쓴 글을 찾기 어려웠다. 사람의 생명이 오갈 수도 있는 중요한 정보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블로거들은 책임감을 꼭 가져야 한다.


나는 꼭 신뢰할만한 전문적인 매체에서 정확한 근거로 쓴 글을 찾았고, 그 정보도 여러 군데에서 다시 중복 확인했다.


이때, 사실에 가까운 정보로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 간암환자들을 위한 ‘간사랑카페’이다.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으나 10년 가까이 생존해 있는 환우들을 중심으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주고 상담도 해 주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한 정보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나 가족을 위해 간암을 이겨낸 환우들이 새벽에도 귀한 시간 내어 질문을 받아주며 상담해 주었다.





몸에 좋은 걸 하나 더 먹기보다는 몸에 해로운 걸 하나 더 빼는 게 훨씬 건강해지는 지름길이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  간암환자에게 나쁘다는 적색 고기, 기름, 밀가루, 설탕을 철저히 멀리했다. 엄마 이수 생신 때도 케이크를 안 샀다.


엄마에게 간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도 엄마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카페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꼭 지켜봐야 한다. 아픈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 다음 나는 다시 카페에 찾아가서 ‘간사랑카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4번 게시물을 올렸다. 나도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장기요양보험에 관한 정보를 올렸다.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인 2021년, 도움만 받던 그 카페에 나도 한 번 환우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다.


죽음을 앞둔 그곳은 냉랭해 공감과 댓글이 거의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주었는데 특히 한 분의 댓글은 잊히지 않는다.




그분 말씀대로 하늘에서 정말 복을 주셨다. 아니, 우리 엄마가 하늘에서 선물을 계속 보내주신다. 엄마가 하늘에서 보내신 선물 보따리를 다음에 보여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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