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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g myself Jun 16. 2024

내게 가장 차가운 너에게

episode 9. 이 세상 가장 가혹한 내면의 비판자


  밤이 되면 아주 생생한 꿈의 잔치가 벌어진다. 낮에는 은은하게 안개처럼 깔려 있던 불안, 걱정들이 무의식의 상태인 꿈에서 매우 잔인하고 무서운 형태로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주로 자주 꾸는 꿈의 주제가 있다.

꿈에서 나는 조연이다. 주연은 빛나지만 조연인 나는 어딘가 소외되고 초라한 모습이다. 조연인 나는 주연을 부러워하다 꿈이 끝난다. 어딘가 떳떳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 어딘가가 존재 자체라면 너무 서글프지만 존재 자체가 떳떳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 수치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꿈속에서도 괴롭힌다.


  떳떳하지 않은 느낌. 존재가 잘못된 느낌.

어릴 때부터 오래간 지닌 느낌이었다.

대개 상담 초반에 내담자의 성장배경 탐색을 한다. 성장배경의 시작은 출산으로부터 시작한다. 계획한 아이였거나 부모가 간절히 원한 아이 었는가 혹은 계획하지 않았거나 반기지 않았던 아이였는가? 성장배경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삶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꼭 탐색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그 질문을 던지면 나의 답은…

나는 적어도 반기지 않았던 아이였다는 것이다. 아들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던 시기에 태몽까지 남자아이였으나 태어난 여자 아이. 그게 나였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조금은 절망하셨다고 들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죄송해야했던 존재였다. 딸이기에. 그 이유로. 아들을 원하는 시댁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어머니는 또 다시 자녀를 출산하여야 했다. 결국 몇 년 후 내 남동생이 태어났다.


  커오면서도 첫째와 막내에 치여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독하게 나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했던 거 같다. 언니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남동생보다 애교가 많거나. 나의 탄생배경에서 나는 이미 큰 벽을 맞닥뜨렸다. 부모님은 00엄마,아빠와 같이 첫째의 이름으로 불렸고, 조부모님은 남자인 남동생 편을 어느 때나 들어줬기에 난 억울한 마음이 항상 들었다. 그러면서 내 맘 속에 잘하지 못하는, 어떤 분야에서 특별하지 않으면 떳떳하지 않은 나라는 마음이 싹트였다.


   브런치 글을 잘 쓰다가 한동안 뜸한 것도 역시 괴로움의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불현듯 정말 불현듯 내가 너무 별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트리거도 없다. 나란 사람 자체가 너무 별로라 손쓸 수 없는 느낌이 훅 다가오니 그간 올라갔던 걸음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나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몇 주간, 우울의 늪을 헤매며 힘을 빼고 마음속 부는 이 폭풍우 같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함께 흔들렸다. 몇 주를 흔들고 간 바람은 이제야 잦아들고 해가 비친다. 조금은 정신 차리니 다 무너졌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의 노력들로 쌓아 올린 성과물들이 견고히 틀을 버티고 있다. 내가 한동안 흔들린다고 무너질 만큼 약하진 않았더랬다.


  세상에서 내게 가장 차가운 비판자.

그건 바로 나다. 매일 부족하다, 못났다, 충분하지 않다, 아름답지 않다 나에게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멈추고.. 숨을 다시 고르게 내뱉으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가슴에 손을 얹고 손을 아래에서 위로 쓰다듬으며 어깨를 만져 온기를 전하며 나를 끌어안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잠시 지친 것뿐. 넌 꽤 괜찮은 인간이라는 거.

떳떳하게 살아오기 위해 노력한 성장형의 인간이라고. 누구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은 네가 아니까 스스로 떳떳해지자. 너를 응원한다. 아주 뜨겁게. 가장 친한 친구인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

오늘도 수고했고 네가 자랑스럽다.




대인관계 일기는 저에게 보내는 편지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이 때로는 소통을 할 수 없는 일방향의 느낌도 있지만 보내주신 라이크로 누군가 반대편에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글이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 나도 당신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사진; 저작자,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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