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 혈액-뇌 장벽(BBB)
우리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는 바로 뇌입니다. 뇌는 인체의 모든 기능을 총괄하는 사령부이자, 신체의 의식, 기억, 감정, 운동, 생리적 균형을 조절하는 중심입니다. 뇌가 손상되면 신체 전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몸은 뇌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 BBB)입니다.
혈액-뇌 장벽은 뇌의 모세혈관을 따라 형성된 특수한 구조입니다. 일반적인 혈관벽은 분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뇌혈관벽은 내피세포(endothelial cell)가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에 ‘타이트 정션(tight junction)’이라는 단단한 연결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덕분에 혈액 속의 독성 물질, 세균, 바이러스, 면역세포 같은 외부 요인들이 쉽게 뇌 조직으로 침투할 수 없습니다. 마치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지나야 만 탑승할 수 있는 것처럼, BBB는 오직 허용된 특정 분자(산소, 포도당 등)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킵니다.
이 시스템은 뇌를 안전하게 지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보호 기능은 동시에 의약품 개발자에게는 커다란 난관으로 작용합니다.
뇌는 혈관 네트워크의 내피세포들로 이루어진 ‘보안 게이트’인 BBB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장벽은 허용된 작은 물질만 통과시키고, 혈액 속 단백질이나 면역세포, 독소를 차단합니다. 그러나 이 방어막이 무너지면 외부 성분이 뇌 속으로 침투하고, 이것이 염증을 유발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촉발합니다.
BBB가 손상되면서 뇌 안으로 들어온 백혈구와 뇌의 glia 세포는 프로염증 cytokine을 분비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사이토카인은 NF‑κB 신호 경로를 통해 연쇄 염증 반응을 유도하고, BBB의 추가 손상을 부르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염증→경련→또 다른 염증이라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경련은 더 많은 염증물질을 유발하고, BBB 붕괴를 가속시키며, 결국 간질 발생에 깊이 관여합니다.
혈장 단백질인 알부민(albumin)이 BBB 손상으로 뇌에 유입될 경우, astrocyte는 이를 잡아들여 TGF‑β 신호 경로를 활성화합니다. TGF‑β는 뇌의 염증 반응과 astrocyte의 기능 장애를 유발하며, neurovascular unit의 통합성을 무너뜨려 뇌신경 회로의 과흥분을 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간질 발생 가능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 연구는 BBB 기능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뇌염증과 간질 발생을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TGF‑β 차단제, 염증 매개체 억제제, BBB 복원 치료 등이 간질이나 후천성 신경질환 치료의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기억력 저하, 인지 기능 감소, 성격 변화 등으로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발병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β-amyloid) 단백질이 과도하게 쌓이고, 신경세포 사이에 ‘타우(tau) 단백질’이 엉키면서 신경세포가 점차 손상된다는 것이 주요한 가설입니다.
이러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베타 아밀로이드 제거, 신경세포 보호, 염증 완화와 같은 기전을 가진 약물을 뇌 속 깊숙한 부위까지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구약을 복용하거나 정맥으로 약물을 주입하더라도, 대부분의 약물은 BBB라는 보안 게이트에 가로막혀 뇌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현재 사용 중인 알츠하이머 약물 대부분이 증상 완화에 그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BBB의 존재입니다.
즉, BBB는 인체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벽이지만, 신경질환 치료에 있어서는 커다란 도전 과제가 됩니다. 의약계에서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이 강력한 장벽을 안전하게 넘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매달려 왔습니다.
BBB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 대표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노입자 기반 약물 전달(Nanoparticle Delivery)
나노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일에 불과한 초미세 입자입니다. 이 작은 입자에 약물을 탑재하면, BBB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특히, 나노입자 표면을 조작해 뇌혈관 내피세포 수용체와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들면, 약물이 BBB를 통과하여 뇌 안으로 전달됩니다. 최근에는 리포좀(liposome), 고분자 나노입자(polymeric nanoparticles), 엑소좀(exosome) 등을 활용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는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초음파와 마이크로버블(Ultrasound and Microbubbles)
저강도 집속 초음파(Low-Intensity Focused Ultrasound, LIFU)와 미세 기포(microbubble)를 이용해 BBB를 일시적으로 열어 약물을 통과시키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은 국소적으로 BBB를 개방할 수 있어 특정 부위에만 약물을 집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안전성과 반복 사용 시의 장기 효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수용체 매개 수송(Receptor-Mediated Transport)
뇌혈관 내피세포에는 특정 수용체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트랜스페린 수용체(Transferrin Receptor) 같은 수용체는 특정 단백질이나 영양소를 통과시킵니다. 이를 응용해 약물이나 약물을 담은 나노입자를 해당 수용체에 결합하도록 설계하면, BBB를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비강(Nasal) 전달법
뇌와 직접 연결된 경로를 이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바로 비강(코)을 통한 약물 전달입니다. 코 점막은 혈관이 풍부하고, 후각 신경이나 삼차 신경 같은 경로를 통해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경로를 활용하면, 정맥 주사처럼 혈류를 거치지 않고도 약물을 빠르게 뇌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뇌 약물 전달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바로 KAIST에서 창업한 바이오 벤처 ‘일리아스(Ilias)’입니다. 일리아스는 나노입자를 기반으로 한 신약 전달 플랫폼을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비강 스프레이(nasal spray) 방식을 활용해 BBB를 우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비강 스프레이 방식은 여러 장점을 가집니다.
비침습적(non-invasive): 주사기나 수술이 필요하지 않음
속도: 투여 후 약물이 뇌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음
환자 친화적: 알츠하이머 환자와 같이 장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 편리하게 사용 가능
이 방식은 알츠하이머뿐만 아니라 파킨슨병, 뇌졸중 이후 재활 치료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에 적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BBB를 극복하려는 연구는 단순히 알츠하이머 치료에 그치지 않습니다. 파킨슨병, 루게릭병(ALS), 뇌종양, 뇌 감염 질환 등 다양한 신경질환 치료의 핵심 과제가 바로 BBB입니다. 나노기술, 초음파, 비강 전달, 유전자 치료, 면역세포 매개 전달법 등 다양한 접근법이 연구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이미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우리는 “뇌에 약을 보낸다”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과제를 현실로 바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뇌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신경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열릴 수 있습니다.
혈액-뇌 장벽은 뇌를 안전하게 지키는 강력한 보호막이지만, 동시에 뇌질환 치료에 있어서는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합니다. 나노기술과 비강 전달법 같은 혁신적 접근법은 이 벽을 안전하게 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임상 적용 단계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KAIST에서 창업한 일리아스와 같은 기업의 노력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환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질환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음 편 예고
제8화 피 한 방울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한다고요?
#나노기술 #약물전달 #혈액뇌장벽 #치료기술 #기억을 지키는 과학
깊은 어둠 속에서 숨죽인 마음이
한 줄기 선율에 흔들리며 울고,
고요한 슬픔이 아름다운 빛으로 스며들어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다시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