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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면역의 균형이 깨질 때

Th2 면역 반응의 과잉

by 누리

나의 세포가 내 몸을 공격한다면?

면역 과잉반응을 표현하는 이미지

군대가 적이 없는 마을을 향해 포탄을 쏟아붓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마을 사람들은 대피하고 집은 무너져 내리며, 결국 피해는 적이 아니라 자기편에게 돌아갑니다. 사실 아토피나 천식 환자의 몸속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부의 작은 자극이나 해롭지 않은 물질에도 면역 시스템이 과도하게 반응하며, 오히려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자가면역질환이란?

자가면역질환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침입자를 공격해 우리를 지키는 방어 체계입니다. 그러나 이 면역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오히려 우리 자신의 세포와 조직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 혹은 염증성 질환(inflammatory disease)입니다.


그림의 왼쪽은 이런 병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효과기 T세포(Teff)라 불리는 면역세포들이 정상적인 조직을 적으로 착각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면역 신호 물질, 예를 들어 IL-2나 IFN-γ 같은 물질이 대량으로 분비되며 염증을 더욱 키웁니다. 본래 외부의 감염을 막기 위한 방어 작용이지만, 방향을 잃고 자기 조직을 파괴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것이지요.


그림 아래쪽의 저울은 이러한 면역 반응의 균형을 상징합니다.
Teff는 공격적인 역할을, 조절 T세포(Treg)는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조절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이 두 세포의 기능이 균형을 이루어, 필요한 만큼만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곧 진정됩니다.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져 Teff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즉, 억제 세포보다 공격 세포의 힘이 더 강해져서 염증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건강한 세포들까지 공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의 오른쪽은 치료의 목표를 나타냅니다.
의학적 치료는 바로 이 깨진 균형을 다시 회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통해 Treg 세포가 다시 활성화되면, 이들은 IL-10 같은 억제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여 염증을 진정시키고, Teff 세포의 과도한 공격을 멈추게 합니다. 그 결과 조직의 손상이 줄어들고, 몸 안의 면역 반응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아갑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본래 ‘방패이자 군대’로서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몸을 공격하는 폭주한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치료란 이 폭주한 군대를 진정시키고, 면역의 균형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균형을 회복한 면역 시스템은 다시 외부의 위협에만 반응하고, 불필요한 염증은 가라앉게 됩니다.


아토피와 천식환자의 Th2 면역과잉반응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이러스, 세균 같은 미생물을 직접 공격하는 Th1 면역 반응, 다른 하나는 기생충이나 알레르겐에 대응하는 Th2 면역 반응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토피·천식 환자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지고, Th2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됩니다.

Th2 세포가 활성화되면, 인터루킨-4(IL-4), 인터루킨-5(IL-5), 인터루킨-13(IL-13) 같은 면역 신호 물질이 대량으로 분비됩니다. 이들은 B세포를 자극해 IgE 항체를 만들게 하고, 호산구를 끌어모아 염증을 유발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 꽃가루, 먼지, 음식 단백질 같은 것에도 똑같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 몸의 면역군대가 “위협 없음”을 “적군 출현”으로 오인해, 불필요한 전쟁을 벌이는 셈입니다.


이런 과잉 반응의 결과가 바로 피부의 아토피, 코의 알레르기 비염, 기관지의 천식으로 이어집니다. 연구에 따르면 아토피 환아의 약 절반은 성장 과정에서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을 경험하게 되며, 이는 면역 균형의 붕괴가 시간과 함께 다른 장기로 확산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임상 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주 목격됩니다. 어린 시절 심한 아토피로 고생했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계절성 비염에 시달리고, 중학교 시절에는 운동할 때 호흡 곤란을 겪으며 결국 천식 진단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면역은 원래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하지만 그 방패가 균형을 잃고 휘두르는 순간, 칼이 되어 우리를 찌르기도 합니다. 아토피와 천식은 단순히 피부나 호흡기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 균형이 무너진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치료 패러다임은 단순히 증상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면역 균형을 다시 맞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염제나 항히스타민제를 넘어, 면역학적 경로를 정밀하게 겨냥하는 치료제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몸속에서 벌어지는 이 ‘잘못된 전쟁’을 막고, 방패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아토피와 천식의 본질적 해결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마무리

면역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져 Th2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우리 몸은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 물질에도 적대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 천식 같은 질환은 이런 잘못된 면역 신호가 피부, 코, 기관지로 확산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런 과민 반응이 일상에서도 예기치 않은 치명적 알레르기 반응(anaphylaxis)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천식

미국의 한 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들이 야외로 현장학습(field trip)을 나간 날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한 여학생이 평소처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었고, 이후 천식을 앓고 있던 남자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키스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남학생은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땅콩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콩의 단백질이 미량이라도 체내에 들어가면, 그의 면역계는 그것을 ‘적군’으로 오인하고 급격한 면역 폭풍을 일으킵니다.

기관지가 급격히 수축하고, 호흡이 막히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가 발생했지만, 야외라서 응급약이나 의료 장비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기도가 완전히 막혀 숨을 쉬지 못한 채 사망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한 음식 알레르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땅콩이나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의 반입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또한, 천식이나 중증 알레르기 환자들은 ‘에피펜(EpiPen)’이라는 응급용 주사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닙니다.
이 주사기에는 에피네프린(epinephrine)이라는 약물이 들어 있어, 급격한 염증 반응과 기도 수축을 즉시 완화시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알레르기 질환은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면역의 균형이 무너져 발생하는 생명과 직결된 질환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군대는 적을 구별하지 못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예방과 응급대처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면역의 균형을 지키는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음 장 예고

제4화 “아토피 행진(Atopic March) – 피부에서 코와 기관지로”
아토피로 시작된 불씨는 왜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으로 옮겨 붙는 걸까요?
다음 장에서는 ‘면역 행진’의 경로를 따라가며, 환자들이 겪는 실제 진행 양상과 최신 연구 결과를 함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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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명상

천천히 숨을 들이마십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며,
몸 안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내쉴 때마다 불필요한 싸움이 멀어집니다.


지금, 내 몸속의 수많은 세포들이
고요히 당신의 호흡을 듣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싸워왔던
면역의 군대가 이제 쉬어갑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 주세요.
“이제 괜찮아.”
“모든 것은 안전해.”
“모든 것은 편안해.”


부드러운 빛이 내 몸속을 흐릅니다.
붉게 달아올랐던 염증이
서서히 식어가고,
세포 하나하나가 평화를 되찾습니다.


들숨마다 조화가 깃들고,
날숨마다 평온이 번집니다.
나의 면역은 다시 제자리를 찾습니다.
나를 지키고, 나를 사랑하는 힘으로 돌아옵니다.


조용히 속삭입니다.
“나의 몸아, 이제 괜찮아.”
“너는 나의 일부이자, 나의 친구야.”
“함께,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자.”


(영상/음악: Pixabay, Narration: V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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