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rene May 16. 2024

[천성과 성장환경]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 너에게 어울리는 자리  © Kyrene






사림이든 물건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그 자리가 특별히 더 중요하다. 집 안에서 자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중류의 식물을 들여놓았다. 처음 만났을 때 예쁜 꽃과 귀여운 열매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듯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사람에게 유익한 공기정화력이 있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이 옮겨진 식물들은 한 해 동안 나의 눈을 즐겁게 하고, 각 식물의 조건에 맞춰 생명수와 영양제를 공급하며 정성을 다하는 나의 사랑을 듬뿍 받고 함께 잘 지냈다.


다음 해 봄, 화초들은 내게 반란을 일으켰다.

싱싱한 잎사귀 사이로, 봄의 전령사인 꽃망울이 한 개도 보이지 않는다. 산호처럼 붉게 빛나던 예쁜 열매도 당연히 볼 수없었다. 한 해를 무심한 이파리만 바라보며 지내고 겨울이 다가왔다.


▲ 가을을 입은 블루베리  © Kyrene


일 년 내내 쾌적한 환경에서 잘 지냈지만, 겨울에도 따뜻한 아파트 거실은 화초에겐 꽃을 피울 수 없는 나쁜 환경인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겨울날, 화초들을 바깥세상에 노출시키고 밤사이 차가운 기온을 경험하게 했다. 얼어 죽을까 봐 걱정스럽긴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 다음 해 봄, 놀랍게도 꽃망울을 맺고 시간이 지나니 꽃을 피워냈다. 수 없이 매달린 작은 꽃송이들을 인공수정 시키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곧이어 초록의 열매를 만들고 보석보다 예쁜 빨간 열매를 그해 가을과 겨울 내내 감상할 수 있었다.


▲ 보석처럼 예쁜 산호수 열매   © Kyrene




▲ 추운 겨울밤을 이겨낸 결실, 블루베리  © Kyrene


사람에게 편리한 아파트 환경이 화초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미안했다. 거실에만 앉아 있는 화초는 꽃피우고 열매 맺는 일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겨울마다 그 환경조건을 맞추기 힘들어서,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화초들이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무성한 잎사귀만 보기로 했다.


▲ 네가 있을 곳  © Kyrene


창밖 강변로에 만발했던 벚꽃 그리고 지금은 초록이 무성해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존재하는 무엇이든 각각에 어울리는 제자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로 또 같이] 세상에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