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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미 Jun 29. 2024

모여있는 곳엔 거북이가 있다

DAY8. 길리 바다에 뛰어들다

 길리 트라왕안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다. 현재를 즐기는 것 자체에 너무도 충만해서 카메라를 꺼내 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기느라 바빠서. 하지만 중에도 꿋꿋이 담아 온 풍경있다. 오른쪽, 왼쪽, 위, 아래.. 각도마다 많이도 찍었다. 집념을 담은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길리의 바다 거북이다.

 날이 밝자마자 바다로 달려 나갔다. 거북이를 볼 생각에 잔뜩 설레어 있는 상태였다. 길리에는 터틀 포인트가 꽤 많은데, 그중 구글맵을 보며 점찍어 놓은 카페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카페까지 달려가는 동안 수많은 호객꾼들의 부름이 나를 유혹했다.


 "안녕~"

 "거북이?"


 심지어 한국어였다. 낯선 타지의 동떨어진 섬에서 들려오는 '안녕'의 합창에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어색했지만, 적응된 이후엔 같이 '안녕!'으로 되돌려 주게 되었다.


유혹을 뚫고 도착한 카페 <카사 보니타>는 마룻바닥처럼 펼쳐져 있어 편히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는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와 맥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다가와 아쿠아슈즈를 불쑥 내밀었다.


 "음료 먹기 전에 먼저  들어가. 지금 바다에 거북이가 있어."

 "어디?"

 "저기 잘 봐봐."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있으니 까맣고 조그마한 무언가가 쑥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봤어? 거북이가 숨 쉬는 거야."

 "우와!"

 "바다에 얼른 들어가! 내가 거북이 나오면 여기서 알려줄게."

 등 떠밀리듯, 그치만 두근대는 마음으로 길리 바다에 드디어 입성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의아함을 안고 바라보는데, 그중 한 명이 급히 손짓했다.


 "여기로 와! 거북이가 있어!"


 풍덩- 바다에 얼굴을 담그고 눈을 떴다. 눈앞에 거북이가 보였다.

길리 앞바다에 거북이가 많이 나타나는 까닭은 이곳이 그들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켜보는 수 쌍의 눈동자들 사이에서 거북이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여유롭게, 자유롭게 바닷속을 유영하면서. 마치 인간들이 어찌하든 긴 세월 티끌 하나 영향받지 않는다는 듯, 오로지 지금의 식사를 마치는 것만이 중요한 것처럼. 홀린 듯 그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 끝까지 가게 될 것만 같았다.


길리에서는 거북이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거북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규칙이 있는데, 너무 가까이 다가가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손을 뻗어 만져서는 안 된다. 평화로운 거북이의 움직임을 오래도록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어긴다고 해서 법적인 처벌이 가해지는 건 아니다. 그저 길리의 바닷속에서 거북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무리 사이의 암묵적 규칙이다. 불특정다수의 무리이지만, 멤버가 바뀌어도 규칙은 유지된다.


만약, 이를 어기고 거북이에게 성큼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손짓하며 함께 거북이를 보자던 사람들의 거센 야유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저 거북이를 따라다니며 그의 식사를 보는 것에 만족한다면, 그가 갑자기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급히 피해줄 마음만 먹고 있다면, 혹시나 헤엄치는 거북이를 놓쳤더라도 누군가 손짓하며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카페에 누워 몸을 말리며 먹었던 미고랭과 맥주 한 잔. 그 맛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바다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내가 이미 천국에 온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한국인들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응, 그런 편이지."

 "한국인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이유라, 글쎄.

나는 나의 추구를 실천하는 느낌 때문에 여행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귀찮아서, 눈치 보여서, 혹은 현실에 치여 안 하고 못 하던 일을, 여행에서는 오로지 그러고 싶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굳이 한다는 점이 좋다. 그로부터 오는 해방감과 성취감을 사랑한다. 이를 느끼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한국에서도 '굳이' '그러고 싶다는 이유로'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 실제의 내가 동일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치만 이를 '한국인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의 공통 대답으로 들기엔 마땅치 않아 보였으므로,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한국인들은 일을 많이 하거든, 그래서 여행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는데?"

 "보통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 야근할 때도 많고."

 "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데?"

 "아?"

 "난 쓰리잡을 해. 카페 직원, 가이드, 호텔리어."

 "대단한데?"


 하루 12시간 일하는 길리 청년 앞에서 근로 시간으로 주름잡을 수는 없었기에, 새로운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명확한 답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다음 여행을 떠났을 때, 만나는 여행자마다 붙잡고 물어보리라. 그 이후 다시 길리에 온다면, 대답을 들려주러 가겠다.

 바쁘지만 상냥한 길리 청년은 맛집을 알려주고 다시 일을 하러 떠났다. 이후의 기록에 다시 언급될 테지만, 스포일러를 하자면 청년이 알려준 <수미사테>는 길리 최고의 맛집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페에서 숙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꽤나 길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2-30분 동안 페달을 밟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중간에 사 먹은 망고 아이스크림과 도착하자마자 뛰어든 숙소 수영장이 아니었다면 더위를 잔뜩 먹었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감정이 한 톨도 들지 않게 하던 그 에너지는, 거북이의 축복이었을까.

 저녁엔 길리의 대표 맛집 중 하나라는 <레지나 피자>에서 동행들을 만났다. 모두 혼자 여행자들이었는데, 쌓아온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역시나 즐거웠다. 우붓에서 만났던 동행도 우연히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유독 길리에서는 우연한 만남들이 잦았다. 동네가 좁아서 가능했으리라. 생각 없이 길거리를 걷다가,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고, '이따 거기서 같이 맥주 한잔?' 약속을 잡을 수 있는 동네. 그것이 내가 빠진 길리의 매력 중 하나였다.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피해 어느 바에 들어갔는데, 10시가 넘자 노래방이 열렸다. 무대에 오른 두 여행자가 관객들 앞에서 자신 있게 Rolling in the Deep을 열창했다.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가수와 관객 모두에게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즐거우면 되었다.


길리에서는 그랬다. 무엇 하나 조바심 들 것이 없었다. 그저, 내가 즐거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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