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 보타닉 가든, 박물관, 레벨 33, 사테거리
• 오늘은 시내에서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샅샅이 가볼까 싶었다. 싱가포르는 알다시피 자연과 조화가 잘 어우러진 도시인데, 가든스 바이더 베이 이외에도 보타닉 가든이라 불리는 싱가포르 식물원도 굉장히 유명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 데다가 무료이기까지 하니 오늘은 그쪽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 의도한 것은 아니다만 보타닉 가든 후문 쪽으로 가니 싱가포르에서 꽤 유명한 ‘티옹바루 베이커리’라는 곳이 있어 그쪽으로 발걸음을 먼저 옮겼다. 7분쯤 걸으니 도로에서 살짝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질 않았는데, 카페에 와보니 차는 꽤 있었다. 한국인들이 주말에 경기도 외곽의 유명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처럼 싱가포르인들도 이런 외진 카페들을 좋아하나 싶었다.
• 와보니 혼자 온 사람은 드물고, 대개는 가족단위로 많이 와있었다. 나는 아침으로 절인 베이컨과 버섯이 들어가 있는 바게트 샌드위치와 ‘유자팝’이라는 과일 음료수를 한 병 주문했다. 그런데 2만 원이 넘게 나오다니… 역시 싱가포르 물가는 싸지 않다고 느꼈다. 샌드위치는 피자처럼 각종 야채와 햄들이 어울려서 무난하게 맛있었다.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었는데, 사진을 볼 때마다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 티옹바루 베이커리를 나와서 싱가포르 식물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긴 야외 식물원이고 당연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약간 후덥지근했다. 식물이야 이것저것 봐도 문외한이라 구분은 못하다만, 전반적으로 녹음과 들판이 잘 어우러졌고, 중간중간 꽃들과 작은 건물들이 산책하기에 심심치 않게 좋았다.
• 후문 쪽에서 걷다 보면 오래전부터 식물연구를 했던 기록들과 장비들을 전시한 건물들도 있고, 현재 연구하는 설비들도 투명하게 구경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식물들을 관람하면서 쭉 걷다 보면 내셔널 오키드 가든 (National orchid garden)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유료로 입장을 해야 하는 곳이라 들어가진 않았다. 동물이면 들어갔을 텐데, 식물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내가 감흥 있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 걷다 보면 식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쏟아지는 작은 폭포도 있고, 오리가 떠다니는 연못도 있다. 너무 서두르지 않고, 가끔씩 앉아서 이런 배경을 구경하는 것도 여유로워 좋았다.
• 오전에 보타닉 가든을 보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저께 들렀던 차이나타운으로 다시 돌아왔다. 밥을 먹기 전에 마침 경로에 ‘불아사’라는 절이 있길래 들렀는데, 당연지사 구조는 중국의 것과 굉장히 유사했다. 도심에 있는지라 법당의 면적은 넓지 않고 금방 볼 수 있는데, 법당 안에는 맨발이 아닌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 확실히 중국계 사람들이 많았으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 짧게 절을 구경하고 나와서 이번엔 주변에 있는 맥스웰 푸드센터로 갔다. 어제 푸드센터에서 싸고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지라, 오늘 점심에 푸드센터에서 해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찾아보니 ‘TianTian Hainanese chicken rice’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하여 그쪽으로 향했는데, 유명하긴 한지 꽤나 줄이 길었다. 15분쯤 줄을 서서 치킨덮밥을 먹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다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았다. 일단 치킨 자체는 부드럽고 맛있는데, 만들어놓아서 그런지 좀 식어서 차가웠고, 그러다 보니 치킨의 부드러움이 갓 나왔을 때보다 많이 사라졌을 것 같다.
• 내리 이틀을 거의 밤 12시까지 돌아다닌지라, 오늘은 힐링타임으로 발마사지를 받을까 했다. 그저께 저녁을 같이 먹었던 한 분이 차이나타운에 있는 ‘Xingyun’ 발마사지 집을 추천해 주셔서 거기로 조금 걸어갔다. 와보니 여기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유명한지 바로 받진 못하고 1시간 뒤에 받을 수 있었고, 주인 분이 카톡계정도 가지고 계셨다. 시간이 되면 카톡으로 오라고 알려준다고 답장을 받고 주변을 좀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 옆에 가보면 ‘차이나타운 포인트’라는 곳이 있는데, 한국의 파리바게트, 지오다노도 있고, 일본의 니토리도 보였다. 차이나타운인데 안의 상가들은 한국인지, 중국인지, 일본인지… 짬뽕되어 있었다. 스타벅스도 있길래, 그곳에서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 3시가 되어 다시 발마사지샵을 찾았다. 발마사지분들끼리 이상한 언어로 소통을 하고 있는데, 듣다 보니 중국어도 광둥어도 아닌 것 같아서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물어봤다. 그러니 마사지사 한 분이 말레이시아에서 쓰는 중국어라고 하신다. 나야 사람들한테 말 거는 걸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마사지를 받으면서 내가 말을 걸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 마사지받은 순간은 진짜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아팠는데, 받고 나니 발이 정말 개운해졌다. 나와보니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까 차이나타운 포인트에서 봤던 ‘송파바쿠테’라는 곳을 가고 싶어 그곳으로 다시 왔다. 참고로 ‘바쿠테’는 한자로 쓰면 ‘육골차’ (고기뼈 차) 정도인데, 민남어 단어라고 한다. 실제로 차는 아니고, 돼지갈비에 마늘과 여러 약재를 우려낸 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는 중국 복건성에서 먹던 음식이다만, 싱가포르인들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고, 살짝 후추향이 나는 돼지뼈 사골 베이스에 돼지갈비라, 한국인들도 그렇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바쿠테를 간단히 먹고,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을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탔다. Bras basah라는 역에 내렸는데, 신기하게도 역에서 나오지 않고 바로 싱가포르 매니지먼트 대학이라는 곳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역사(겸 대학 건물)에서 대학생들이 한창 삼삼오오 모여서 군데군데 춤연습을 하고 있었다. 역시 젊은 열정이란 좋구나 생각했다.
• 역사에서 올라오면 멀지 않은 거리에 싱가포르 박물관이 보인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중국 국가박물관에 비하면 규모는 좀 작으나, 싱가포르 역사를 1~2시간 정도 안에 알아보기에는 알찬 곳이라 할 수 있었다.
• 싱가포르 근대 역사를 짧게 말하자면, 18세기 이전의 싱가포르는 잠깐 번영했다가 낙후된 어촌이었는데, 영국의 ‘토머스 래플스’라는 인물이 싱가포르에 상륙하면서 국제무역항으로서의 싱가포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연지사 영국이나 영국인들이 봉사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고, 영국의 무역항으로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어쨌거나 싱가포르가 발전의 시작은 이 인물로 시작되었으니 아직까지도 싱가포르에서는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거리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고 ‘래플스’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여행하다 보면 많이 찾을 수가 있다.
• 어떻게 보면 영국인들이 식민지배를 한 침략자라고 볼 수도 있으나, 박물관에서 전체적으로 영국에 대한 반발심은 전혀 느껴볼 수 없었다. 다만 시간순으로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일제통치하의 싱가포르에 대한 강한 반발은 느껴졌다. 아무래도 ‘Sook ching’ (중국어로 숙청이라는 뜻이다)이라는 사건을 통해 수만 명의 싱가포르인들이 학살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징 대학살 외에도 일제의 대거 학살이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박물관에서 지하철을 타고, 그저께 구경했던 가든스 바이더 베이의 해안가 쪽을 따라 걸어갔다. 방금 비가 막 왔음에도 불구하고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바닷가를 따라가다 보면, 사테 바이더 베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사테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참고로 이 ’사테‘라는 음식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주로 먹는 양념된 꼬치이다.
• 4시쯤에 바쿠테를 먹은 지라, 간단하게 양고기 반, 소고기 반 해서 사테를 10개만 주문했다. 갓 구워진 사테와 땅콩소스 그리고 밑반찬 마냥 오이와 양파가 약간 나왔다. 바닷가 풍경을 보면서 사테를 하나 들어 땅콩소스에 찍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직화로 바로 구운 고소한 고기와 달달한 땅콩소스의 조합이 너무 좋았다.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다니… 이전에 시드니에서 한 번 먹어본 음식이긴 했다만 그래도 역시 이렇게나 맛있었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배가 그렇게까지 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10개만 시켰던 것이 너무너무 후회가 되었다.
• 사테를 먹고 해변을 걸어서 그저께 갔던 가든스 바이더 베이를 다시 갔다. 다름 아닌 ’ 슈퍼트리 쇼‘를 보기 위함이었다. 매일 저녁 7시 45분과 8시 45분에 시작이 되는데, 나는 7시 45분 쇼를 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7시 30분쯤에 슈퍼트리 주변까지 왔는데, 이미 쇼를 보기 위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시간이 되어 쇼가 시작되니 어디선가 상해탄 ost (1980년에 발표된 홍콩 가수 엽려의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슈퍼트리의 조명이 화려하게 형형색색 바뀌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유명한 노래 혹은 음악을 엄선했는지, 우리나라의 아리랑도 흘러나왔다. 좋은 노래들과 음악의 조합이 매우 아름다웠다. 다만, 너무 좋았다는 평이 많아서 내가 기대가 높았던 탓인지, 기대이상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 약 15분의 슈퍼트리 쇼가 끝나고 시내 쪽으로 가려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어지간히 오는 것이라면 맞고 가려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약 30분을 바다를 봤다가 핸드폰을 했다가 하며 기다렸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라 비를 기다리는 것도 아주 지겹지는 않았다.
• 비가 잦아들고, 마리나베이금융센터의 Level 33이라는 곳에 지하철을 타고 갔다. Level 33이라는 이름처럼 33층에 위치한 바인데, 가보니 브루어리 시설들이 있어 이곳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듯싶었다. 그저께 같이 저녁을 먹었던 분들이 이미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그곳에 나도 같이 앉았다. 실내 자리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야외 테라스를 나가보니 정말 미치도록 경치가 아름다웠다. 아마 싱가포르에서 봤던 경치 중에서 단연 가장 아름답지 않았을까. 경치가 너무 예뻐서 사진이 아니라 눈으로 담아 두려고 오래오래 바라봤다. 아마 싱가포르가 다시 가고 싶어 진다면 여긴 꼭 다시 오게 될 것 같았다.
• 바인데, 의외로 11시에 문을 닫아서 이른 해산을 했다. 그런데 아까 10개 밖에 안 먹은 사테가 너무너무 아쉬운 것이 아닌가. 마침 레벨 33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라우 파 삿‘이라는 푸드코트가 있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곳의 차도는 오후 7시가 되면 차량을 통제하고 포장마차로 바뀌게 되는데, 이곳을 ’사테 거리‘라고 한다. 말 그대로 사테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 사테 맛이야 어디든 다 고만고만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7번, 8번 집이 유명해서 그런지 이쪽만 줄이 길었다. 나도 괜히 맛없는 곳을 가고 싶진 않아서 여기에 줄을 섰다.
• 주문을 하려니 카드는 15 달러 미만은 안된단다. 사테 하나에 0.8 달러인데 15달러를 넘기려고 양 5, 치킨 5, 소고기 5, 새우 2개나 시켰다. 과한 야식이었다만, 아까처럼 땅콩소스에 찍어서 각종 고기를 먹어보니 역시나 맛있었다.
• 배부르게 사테를 먹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가니 역시 오늘도 12시가 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