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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Mar 23.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11)

영국 워킹홀리데이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일개미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향기 나지 않는 꽃. 시들어버린 나뭇잎. 빛을 잃은 눈동자. 생기 없는 입술. 본능에 충실한 짐승.


현실과 꿈의 괴리는 좀처럼 육신과 영혼을 하나로 묶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 간다. 온전히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지식을 쌓고 손을 들어 질문하는 일이란 한 줌의 모래알처럼 쉽사리 쥐어지지 않는다. 나의 늙음은 찾아오지 않고 끝이 없는 봄이라면 소용돌이치는 이 흑백의 감정이 가라앉을까. 침전된 응어리가 남아 내 인생의 그늘을 만든다.


눈을 뜨면 한숨부터 터져 나오는 하루가 지겨워졌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자아이다. 소진된 동력은 껍데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고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부표와도 다를 것이 없다. 차라리 나는 새라면 그 참신함과 블랙홀 사이에서 아찔한 외줄 타기라고 했을 텐데. 껍데기만 남은 몸뚱어리는 의미 없이 움직이고 마음도 썩게 해 버려 ‘살아있는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발전이 없다면 끝을 내야 했고, 만족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오픈조와 마감조로 일하다 보면 베이커리와 커피빈 등 식품의 유통기한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식품을 유통하는 곳은 유통기한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아직도 나는 물품을 살 때면 제조기한, 유통기한, 성분표를 유심히 살펴본다. 인 앤 아웃부터 폐기까지 매뉴얼대로 관리하다 보면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처음에는 쉬웠는데 다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멀쩡한 음식을 그냥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전 직원이 퇴근 후, 가게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를 열어 버려진 ‘맛있는 파니니’를 꺼냈다. 포장도 그대로고 새것이란 생각만 했다. 언젠가 해소될 나의 허기를 위해 그리고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정 멀쩡한 일일까? 나의 배고픔 하나 때문에 쓰레기와 함께 묻혀있는 ‘때깔고운 파니니’를 사수해야 했을까.

단 하루만 행해지면 됐을 일은 점점 꼬리가 길어지고 있었다. 첫 시작부터가 문제였나. 부러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숨어서 움츠렸다.

이 의식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내 시력이 1.0 이상이 되었다면 행인이 걸인이 나를 지켜보는지 알았을 텐데 말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 행인은 나의 동료 도로타였고 그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꽤 흥미로운 것을 본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꽂혀있는 동안 나는 구렁텅이에 빠져 좀처럼 의식할 수 없었다. 기어코 나의 행동의 끝에는 대가가 따라야 했다. 애써 웃음 지었다. 그 상황에서 웃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걸인이 탐하는 ‘스타벅스 파니니’를 선점해 먹었던 그 걸인은 터줏대감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버려진 파니니’를 건네며 일단락됐다.


내 인생은 이미 바닥을 거쳐 지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서울역에서 울려 퍼지던 고함소리가 들려 눈을 번쩍 뜨며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이해한다. 나의 가난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괜찮다. 그 허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늘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봄꽃처럼만 지낸다면 추운 겨울의 깊이와 아픔, 격렬한 추위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통장에 1억이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맞바꾸어 추함과 비참함을 내 안에 담아 간직한다. 무한대를 준다고 한들 나는 그때로 똑같이 돌아갈 생각이다.

푸릇한 잡초 같던 20대의 추억이 있어 지금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알고 소중함을 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피 같은 시간이 나를 아프게 해도 고이고이 간직할 것이다. 시대를 타고났고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다운 이유는 굴곡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시간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시안을 가지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과 나뭇잎을 보며 우수수 떨어질 날을 떠올린다. 피고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빛나던 시간 속에서 또 언젠가는 저물 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나는 정형화된 삶을 피하고 나대로의 삶을 살 것이며 가소로운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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